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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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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이 ‘와우’ 할 때까지

기업문화를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들이
반드시 찾는 일종의 성지순례 코스가 된 자포스 방문기
등록 2015-02-08 13:57 수정 2020-05-03 04:27
직원과 고객에게 행복을 배달한다는 기업문화로 유명한 ‘자포스’의 직원들. 자포스 누리집 화면 갈무리

직원과 고객에게 행복을 배달한다는 기업문화로 유명한 ‘자포스’의 직원들. 자포스 누리집 화면 갈무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새롭게 떠오르는 명소가 있다. 대부분은 이 말을 들으면 “새로운 카지노 호텔이 또 생겼나보다”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카지노나 호텔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런데도 요즘 많은 라스베이거스 관광객이 이곳에 들러 투어를 체험한다. 그리고 꼭 가볼 만한 곳이라고 추천한다.

라스베이거스의 새로운 명소

그곳은 놀랍게도 평범한 일반 회사다. 주로 신발을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회사로 그 주인공은 자포스(Zappos.com)다. 자포스는 토니 셰이라는 대만계 미국인이 1999년에 세운 회사다. 2009년 아마존에 12억달러에 매각됐다. 그는 회사 경영에서 직원과 고객에게 행복을 배달한다는 철학으로 독특한 기업문화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자신의 성공담과 기업문화 철학을 풀어쓴 라는 책은 2010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리고 라스베이거스의 자포스 본사는 자포스 고객뿐만 아니라 놀라운 기업문화를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들이 반드시 찾는 일종의 성지순례 코스가 됐다. 나도 지난 1월 초 가전박람회(CES)를 참관하러 라스베이거스를 방문한 김에 자포스에 들렀다. 다음은 내 짤막한 자포스 방문기다.

발랄한 분위기의 로비에서 일행이 이름을 등록하자 자그마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그때그때 방문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앉아서 자포스팀의 안내를 받는다. 모두 자리에 당도하자 자포스 직원 3명이 나와 유쾌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자포스의 역사와 기업문화를 소개하는 짧은 비디오를 보여준다. 비디오에는 창업자인 토니 셰이가 등장해 자포스의 역사, 기업문화와 핵심 가치를 설명한다.

비디오를 본 뒤 각자 7~8명씩 작은 그룹으로 나눠 자포스 직원이 인솔해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다. 우리 그룹을 맡은 사람은 하와이 출신의 료(Ryo)라는 친구였다. 일본계 미국인이라는 그는 “안녕하세요!” 하고 힘차게 안내를 시작했다. 하와이에 살 때 친한 친구가 한국계여서 간단한 한국말을 배웠단다.

그가 첫 번째로 안내해준 곳은 인력관리(HR) 부서였다. “여기가 우리 멋진 HR팀입니다”라고 소개하면 직원들이 일하다 말고 “예이”(Yay) 하고 환호성을 질러대며 인사한다. 이후 지나가는 부서마다 가이드가 소개를 하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른다. 일에 방해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이젠 익숙해져서 괜찮다고 한다. 이것도 사내 문화의 일부라고 했다.

사무실 내부는 풍선·줄·인형 등으로 화려하고 튀게 장식돼 있다. 사무실이라기보다 어린이 놀이방 같은 분위기도 풍긴다. 책상 위에는 직원의 이름이 새겨진 자동차번호판이 하나씩 달려 있다. 이름표 역할을 하는 이 번호판에는 스티커로 작은 숫자가 붙여져 있는데 근속연수를 나타낸다고 한다. 한쪽 벽에는 ‘직원 복지 혜택’ 내역이 크게 붙어 있다. 치과·안과를 포함한 의료보험과 연금 가입, 휴가, 건강관리 지원 등 각종 혜택이 촘촘하게 적혀 있다. 직원들이 회사에서 어떤 혜택을 받는지 잘 알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상담원이 필요하다면 보내는 꽃과 편지

가장 놀란 것은 고객지원팀에서였다. 토니 셰이가 비디오에서 설명하는 자포스의 핵심 가치 10가지 중 첫 번째는 “서비스를 통해 ‘와우’ 경험을 선사한다”이다. 온라인을 통해 신발을 판매하는 회사인 만큼 자포스에서 전화로 고객 응대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보통 이런 회사에는 고객상담원이 하루에 몇 개의 고객 콜을 처리해야 한다는 할당량이 있기 마련이다. 빨리 고객 상담을 처리하고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일정한 유형의 질문에 판에 박은 듯이 대답하는 대본(스크립트)이 마련돼 있기도 하다. 앵무새가 따로 없다. 심지어 어떤 경우는 고객과 상담하는 김에 추가로 다른 물건을 구매하도록 유도하고 성공하면 커미션을 지급한다.

자포스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 고객상담원들의 목표는 하루에 일정량 이상의 고객 전화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 고객과 감정적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그에 따라 고객에게 ‘와우’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목표다. 그 재량권이 상담원에게 부여된다.

첫째로 통화에 제한 시간이 없다.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계속 통화한다. 료는 자신이 상담원으로 일할 때 한 고객과 5시간 동안 통화한 기록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최고 기록은 어떤 상담원이 8시간 동안 통화한 것이라고 한다. 둘째로 사전에 쓰인 대본에 따를 필요 없이 고객과 자유롭게 대화한다. 상담원은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고객의 문제를 자기 일처럼 해결해주는 것이 목표다. 셋째로 상담원은 본인이 필요하다고 느낄 경우 감사 편지나 꽃, 쿠키 등의 선물을 고객에게 보낼 수 있다.

믿기지 않아서 료에게 재차 물어봤다. “일반 상담원이 매니저의 허락을 받지 않고 고객에게 꽃이나 쿠키 등을 보내는 것이 가능한가? 꽤 비용이 들 것 아닌가.” 가능하다고 한다. 상담원의 판단을 신뢰한다는 것이다. 고객과 아무리 오래 통화하더라도 다 필요해서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는 얘기다. 그리고 칠판에 적혀 있는 전날의 상담 통계를 보여준다. 그 통계에 따르면 꽃은 15번 보내졌고 감사 편지는 345회 발송됐다.

우리는 최고경영자(CEO)인 토니 셰이의 자리도 둘러봤다. 방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바깥쪽을 면한 창가에 ‘토니’라는 번호판이 달린 그의 책상이 있었다. 책상은 다른 직원들과 똑같은 크기로 쌓여 있는 책과 물건으로 어수선했다.

투어가 끝나고 만난 존 올스크는 자신을 자포스의 ‘문화전도사’(Culture Evangelist)라고 소개했다. 원래 고객상담원으로 일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전세계를 돌며 자포스의 기업문화를 알리는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2005년 이후 우리의 경영 전략은 기업문화에 투자하는 것”이라며 “그것은 좋은 기업문화가 궁극적으로 직원들의 생산성을 높이고 고객 서비스의 질과 브랜드 가치까지 높일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재택근무·원격근무는 없어요

토니 셰이가 이런 방침으로 회사를 경영한다고 선언한 것이 2005년이라니 이제 10년이 됐다. 놀라운 점은 아마존에 회사를 매각한 뒤에도 아마존과는 독립적으로 이런 ‘행복 배달하기’ 경영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객과 직원의 만족을 통해 계속 높은 실적을 내놓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그들은 이같은 자포스의 문화에 맞는 직원을 뽑기 위해 무척 공을 들인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튀는 분위기에,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수평적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오래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 회사에서 요즘 일반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재택근무나 원격근무를 자포스에서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도 달랐다. 원격으로 근무할 경우 자포스의 독특한 기업문화를 배우고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입사자들은 모두 라스베이거스 본사에서 근무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자포스 투어를 마치면서 사람을 끝까지 믿는 토니 셰이의 인본주의적 경영이 좋은 결과를 내고 있는 것 같아서 부러웠다. 한국에도 이처럼 사람 중심으로 경영하는 회사가 늘어나길 기원한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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