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 드라마에서는 옛 시절의 다방이 단골로 등장한다. TV가 보급되기 전 전국을 돌아다니던 쇼단의 이야기를 그린 문화방송 월·화 드라마 다. 단장들은 다방을 자신의 사무실처럼 이용하고, 배우들은 일거리를 찾아 다방에서 간단한 오디션을 치른다. 손님들은 정작 커피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찾아 다방에 온다. 예나 지금이나 카페는 어떤 욕망의 풍경을 빚는 장소다.
내가 중학생일 때만 해도 학생은 쉽게 커피숍에 출입할 수 없었다. 커피숍 창문 너머로 보이는 ‘언니’들은 범접할 수 없는 세계의 사람처럼 우아해 보였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친구들과 함께 카페를 아지트 삼았다. 그때 카페를 찾았던 건 ‘프라푸치노’란 어려운 이름의 음료를 먹기 위해서라기보다 어른 흉내를 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톰 크루즈의 다섯 살배기 딸 수리 크루즈의 파파라치 사진에선 스타벅스 테이크아웃 컵을 든 아이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카페’와 ‘커피’만큼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아이의 욕망을 투영하는 대상도 없었다.
어른이 되어 글을 쓰는 나는 카페와 친하다. 사람들과 더불어 일하는 느낌이 좋아서 카페 한쪽에 앉아 일을 하다 보면 이전과는 너무나도 달라진 카페 풍경에 놀랄 때가 많다. ‘별다방’이라 불리는 한 다국적기업의 카페는 영어학원과 나란히 붙어 있다. 수업 중인 아이들을 기다리며 어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녀들의 학업을 걱정하고 있으면, 몇 시간 뒤 일고여덟 살쯤 돼 보이는 아이들이 “마미, 아임 헝그리!”를 외치며 카페로 뛰어 들어온다. 뉴욕이 따로 없다. 어머님들은 한결 원어민에 가까워진 아이들의 영어 발음을 체크하며 흐뭇해한다. 중·고등학생 과외 수업도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과외 선생님과 학생은 함께 커피를 마시며 명문대에 대한 환상을 나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느긋하게 신문을 읽는 광경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언젠가 어느 기사에서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카페 자리를 차지하는 노인들을 인터뷰했다. 그때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노인정보다 카페가 훨씬 더 살아 있다는 활력을 준다.”
이 시대의 카페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성업 중이다. “아임 헝그리!”를 외치던 꼬마 아이는 곧 고등학생이 되어 카페에서 과외를 받을 것이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카페에서 리포트를 작성하고, 졸업해서는 자기소개서를 완성할 것이다. 그들은 장차 사회인이 되고 누군가의 부모가 된 뒤엔, 또다시 그들의 아이들이 카페를 요람 삼아 성장할 채비를 마칠 것이다.
카페에 앉은 누군가는 무언가를 욕망하는 사람들이다. 꿈을 지닌 누군가일 수도, 관계는 피하나 소통은 원하는 외로운 현대인일 수도 있다. 수십 년 뒤의 카페가 궁금하다. 풍경이 어떻게 변했든, 사람들은 여전히 커피를 홀짝이며 서로의 욕망을 훔쳐보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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