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케이블 온스타일 채널에서 방송된 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다. 1965년 영화 출연진들이 45년 만에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줄리 앤드루스의 눈은 세월과 무관하게 반짝거렸고, 백발이 된 크리스토퍼 플러머에게선 여전히 트랩 대령의 위엄이 넘쳤으며, 을 부르던 7명의 꼬마들은 어느새 주름진 얼굴의 중년 남녀가 돼 있었다. 그들은 입을 모아 이 인생을 바꿔놓았고, 이 영화로 또 다른 가족을 얻었노라고 말했다. 그들에게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세기적 영화에 출연했다는 평생의 명성이 아닌, 그 특별한 인연이었다.
나도 그렇고 주위를 둘러보아도 사람들은 보통 특별하게 이어진 인연을 좀더 각별하게 여긴다. 한 지인이 내년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상대는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스튜어디스다. 그는 비행기에서 만난 스튜어디스를 여행지에서 3번이나 마주쳤고, 그 강렬한 첫 만남이 결혼까지 골인할 수 있던 큰 원동력이 되었다. 또 다른 지인은 유학생인데, 중고로 가구를 내놓은 남자를 판매자와 구매자 관계로 만났다가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사람들은 특히 남녀관계에서 ‘특별한 인연’에 더욱 집착한다. 여자라면 누구나 남자친구와의 만남에서 그 타이밍이 얼마나 기막혔고 그와의 교감이 얼마나 남달랐는지 장광설을 펼쳤던 경험이 있으리라.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는 주인공이기에 한 번뿐인 삶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증명하고 싶을 것이다. 내가 모르는 불가항력적 힘이 인도한 인연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게 의도치 않았던 만남은 우연히 다가온 듯하지만, 큰 그림으로 보면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이다. 처음부터 특별했던 것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시작은 남달랐지만 종국엔 그저 스쳐지나가기만 했던 인연이 얼마나 많은가. 소중히 가꾸었기에 특별해진 것이고, 특별해졌기에 사소한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해 그것을 아름다운 ‘운명’ 혹은 ‘인연’으로 예쁘게 포장한 것이다. 왜 그렇게까지 인연에 집착할까?
우리는 때론 처음 만난 사람에게 가장 깊은 치부를 드러내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큰 비밀을 숨기기도 한다. 이런 모순의 뿌리에는 누구에게도 온전히 이해받지 못한다는 외로움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열심히 관계를 가꾸고, 새로운 인연을 꾸려나가고, 인생의 기념비적인 순간을 그들과 함께 보낸다. 그렇게 평생의 인연이 생겨나고, 그들이 존재함으로써 우리가 고독하지 않고 풍요로운 인생을 살아왔노라고 안도한다. 가장 특별한 관계란, 어쩌면 나와 내 인생의 진정한 동반자인 외로움과의 관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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