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고 권위의 음악 시상식인 54회 그래미 어워드를 하루 앞두고 휘트니 휴스턴이 돌연 사망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에는 그녀를 추모하는 글이 넘쳐났고, 그래미 어워드는 추모 공연을 긴급 편성했다. 시상식장에선 그녀의 대표곡인 가 울려퍼졌다.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가 마약과 알코올중독에 시달리다 안타깝게 사라졌다.
휘트니 휴스턴이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솔직히 얘기하자면 진부함이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슈퍼스타가 마약과 술에 절어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재활원에 다니며 재기를 다지고 에 나와 울며 참회하는 스토리는 태평양 건너의 사람들도 지겹도록 봐왔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의 전성기인 1980~90년대에 난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그녀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통계상으로만 짐작할 뿐이다. 그러다 지인과 휘트니 휴스턴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대의 아이콘의 죽음이 갖는 의미를 새삼 실감했다. 나에겐 단순한 스타의 죽음이었지만, 그녀에겐 한 시대와의 작별이었다. 지인은 자신을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 세대’로 정의했다. 휘트니 휴스턴의 죽음으로 인해, 그녀는 그 음악을 사랑했던 시절이 아주 멀리 흘러가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추억의 일부가 붕괴된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문득 영화 가 떠올랐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인 라디오 DJ 이민정이 김현식과 김광석을 헷갈려 하는 장면이 나온다. 담당 PD인 이정진은 어떻게 그 둘을 헷갈릴 수 있느냐며 지나치게 격분한다. 이해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다른 PD가 설명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을 투영하는 가수가 존재하며, 그들을 모욕하는 건 그 추억을 모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음악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일지라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 나만의 노래, 나만의 아티스트가 있을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7080 세대로 ‘세시봉’ 친구들이 TV에 나올 때마다 아련한 표정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신다. 부모님의 머릿속에는 그때 그 시절의 추억들이 두둥실 떠오를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그룹 ‘신화’의 팬이었는데, 4년 전 그들의 10주년 콘서트에서 24살의 나이에 중·고등학생들처럼 풍선을 흔들며 즐거워했다. 나의 학창 시절과 오랜만에 조우하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음악만큼 한 시절의 그림을 오롯이 담는 그릇은 없다. 그리고 모두가 그 그릇이 깨지지 않고 아름답게 간직되기를 바란다. 시대의 아이콘으로 추앙받는 스타들이 단순히 그들의 레코드뿐만 아니라 그들의 음악을 듣고 자란 한 세대의 추억을 책임지고 선한 영향력을 끼쳤으면 한다. 나의 아름다웠던 시절을 담았던 그릇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추억은 늘 음악과 함께 흐른다.
저자
* 김민서의 ‘나와 같다면’ 연재를 마칩니다.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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