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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이상형을 만난다는 것

등록 2011-11-11 10:41 수정 2020-05-03 04:26
뿌리깊은 나무

뿌리깊은 나무

최근 가장 즐겨 보는 드라마는 SBS 다. 이 드라마는 ‘시대적 배우’ 한석규의 16년 만의 드라마 복귀작이라는 사실로도 큰 이슈를 모았다. 청년 세종 역의 송중기는 한석규라는 대배우의 아역이라는 부담감에 잠도 오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방송 뒤 송중기는 “촬영장에서 처음으로 한석규 선배를 만났는데, 내 연기를 모니터해주셨다. 눈물이 핑 돌았다”며 한석규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성장하는 젊은 배우가 연기의 권위자를 만났을 때 느꼈을 감격과 떨림이 짐작되는 대목이다. 그런가 하면 한국방송 에서 송골매의 를 불러 우승한 허각은 배철수에게 트로피를 받으며 눈물을 흘렸다. 1년 전 에서 우승했을 때도 트로피를 안겨준 사람이 바로 배철수였던 것이다. “1년 사이 많이 성장했다”는 배철수의 칭찬을 들으며 허각이 눈물을 보인 이유는, 아마 닿을 수 없는 존재로 여긴 사람에게 자신이 옳은 길을 가고 있음을 확인받은 데서 오는 안도감이 아니었을까. 꿈의 이상형을 만나려고 부산에서 경기도 일산까지 보름 동안 도보행을 감행한 20대 청년도 있다. ‘국민 MC’ 유재석을 만나겠다는 일념 하나로 일산 문화방송으로 무작정 찾아간 그는, 결국 유재석을 만나 1시간 동안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

꿈을 가진 20대에게 자신이 평생 몸담고 싶은 분야의 권위자와 만나는 것은 언제나 긴장되고 설레는 경험이다. 몇 달 전 김탁환 작가에게 소설 배경 자료 조사에 대해 여쭤보며 집필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집필실을 가득 채운 방대한 역사 서적과 자료들을 보며, 한 권의 소설을 쓰는 작업이 얼마나 치밀한 조사와 인고를 바탕으로 하는지 깨닫고 새삼 내 직업의 무게를 실감했다. 어느 지인은 자신의 멘토인 성공한 최고경영자(CEO)를 만난 기분을 ‘처방전을 받은 환자의 심정’으로 표현했다. 중요한 것은 처방전의 완전함이 아닌, 존경하는 사람에게서 검증받았다는 사실 그 자체라는 것이다. 불안과 조급함의 화신인 20대에게 ‘진짜 어른’의 칭찬만큼 값지고 절실한 것은 없다.

누구나 어린 시절 선생님에게 칭찬받고 수줍게 뿌듯해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아주 잘했어’ 혹은 ‘잘해가고 있다’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는, 말의 힘으로 성장해본 자만이 안다. 겸허한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가 어른의 칭찬을 들으면, 가슴은 뜨거워지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샘솟는다. 그 뜨거운 용기가 바로 꿈을 향해 달리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권위자에게 인정받는 신인들의 모습에 우리가 뿌듯해한 것은, 우리 사회에 아직 존경받을 어른이 많다는 안도감과 그런 어른들에게 인정받으며 어른이 돼가는 보편적 삶의 진행 단계에 공감했기 때문 아닐까. 그렇다면 20대가 바라는 이상향의 세계는, 아마도 믿고 따를 진짜 어른이 가득한 세계일 것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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