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1978년, 전남 광주에서 중학교 3학년이던 때의 기억입니다. 당시 공부깨나 한다는 아이들의 입에선 심심찮게 ‘2당3락이냐 3당4락이냐’는 우스갯말이 돌아다녔습니다. 전북 전주의 전주고 입학시험에 안전하게 붙으려면 2개만 틀려야 하느냐, 3개를 틀려도 괜찮으냐는 얘기입니다. 당시 200점 만점인 입학시험의 커트라인은 195점을 오간 것 같습니다. 광주가 속칭 ‘뺑뺑이’(평준화) 체제였던 터라, 전주로 ‘유학’을 하려는 친구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해 전주도 평준화 지역이 됐고 아이들의 전주행은 물 건너가게 됐습니다. 그러자 입학시험이 여전히 유지됐던 순천(순천고)이나 경남 진주(진주고)가 대안으로 떠올랐고, 실제로 몇몇은 낯선 도시로 고교 유학길을 떠났습니다. 그 친구들이 타지에서 10대의 방황기를 어떻게 보냈는지, 그리고 꿈을 이뤘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1970년대 명문고 열풍의 끝자락 풍경은 제게 ‘유학’과 ‘2당3락’으로 떠오릅니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중3 시절을 일깨운 것은 50%가 넘는 지지율의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내건 교육 공약입니다. ‘자율형 사립고’를 전국에 100개 만들고, 대학에 입시의 자율성을 확대해주겠다는 약속을 맞물려놓으니,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의 12년짜리 ‘무한 입시전쟁’이 눈앞에 떠오릅니다. 자율형 사립고에 가기 위해 학부모와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올인할 테고, 사교육 광풍은 사그라지기는커녕 빅뱅할 게 뻔합니다. 부모의 경제력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는 유력한 수단이 될 테니 ‘개천에서 용나기’란 점점 더 현실 바깥의 일이 될 겁니다.
게다가 대학의 서열화만큼 강력한 고교의 서열화가 나타날 것이 확실해 걱정스럽습니다. 이 후보는 100개의 자율형 사립고를 얘기했으나, 몇 년만 지나면 명문대 진학률에 따라 이들은 곧 순위가 매겨집니다. 1960~70년대의 경기·서울·경남·경북·광주일고 같은 10~20개의 명문고 체제가 다시 등장할 테고, 우리 사회는 ‘SKY’(서울·고려·연세대)도 모자라 명문고라는 이중의 학벌 집단주의에 종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손쉬운 예로, 서울 국회의원 48명의 출신 고교를 들여다봅시다. 이들 중 서울·부산 등 주요 도시에서 고교 평준화가 실시된 첫해인 1974년 이전에 고등학교를 들어간 남성 의원은 30명으로, 이 가운데 15명이 서울의 ‘3대 명문’으로 불렸던 경기·서울·경복고를 나왔습니다. 지방은 사정이 더합니다. 대구의 경우 12명 의원 가운데 평준화 이전에 고교를 들어간 남성 의원은 10명인데, 이 가운데 8명이 경북고 출신입니다. 가히 경북고 ‘소공화국’인 셈입니다.
아무리 곱씹어봐도 이 후보의 교육 공약은 더욱 공고한 학벌사회와 사교육의 팽창, 교육 양극화를 불러올 게 뻔해 보입니다. 올해 중3, 초등학교 5학년의 두 아이를 둔 학부모 처지에서 이 우울한 묵시록은 정말 남의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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