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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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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직 어리잖아요?

등록 2007-01-25 00:00 수정 2020-05-02 04:24

▣ 임경선 칼럼니스트·Http://www.catwoman.pe.kr

지난 몇 년간 한 매체를 통해 주제 넘게 인생 상담 칼럼을 진행했는데 눈에 띄는 변화를 한 가지 꼽으라고 한다면 요새 부쩍 2535세대 여성들의 일과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아진 거라고 할 수 있겠다. 요는 이렇다. “나름의 포부를 안고 시작한 일인데 지금의 내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이 가요. 의욕 상실 매너리즘으로 하루하루를 견뎌내고만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질식 상태가 당연한 건가요, 아니면 제가 지금 뭔가 헛살고 있는 걸까요?”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멀쩡히 씩씩하게 직장에 잘 다니고 있거나 어느새 하나둘씩 결혼이다, 이직이다, 프리랜서다, 창업이다라며 저마다의 날개를 활짝 피더란다.

또 다른 이들은 자학과 어리광의 짬뽕으로 머리 싸맨다. “내게 문제가 있을까요, 아니면 이 회사가 나쁜가요? 더 노력을 해서 직장에서 인정받으려고 해보지만 솔직히 피곤하고 권태롭고 자신도 없어요. 그렇다고 지금의 일을 이 페이스대로 하면서 현상 유지한다는 보장도 없죠. 아마 패자로 전락하겠죠? 혹시 제가 무리해서 과욕하는 건 아닐까요? 오호, 소박하게 욕심 안 부리고 사는 게 여자의 행복이자 미덕 아닐까요?” 그렇게 제자리걸음 속에서도 입들은 역시 바쁘다. “내가 아예 첫 단추부터 잘못 낀 건 아닐까요? 그렇다고 지금까지 해놓은 걸 버리기도 아깝잖아요!” 오락가락,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동안 어느새 눈 밑의 다크서클이 짙어져간다.

못된 성질을 뒤로하고, 가급적 상냥하게 답해주려고 노력한들, 고민 상담을 하면서 현실을 덮고 이상적인 낙관론으로 위로를 하는 것만은 피했다. 사실 고민을 해결하는 것은 냉정할 정도로 혹독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놈의 현실은 불공평하고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기사들을 보면 알죠). 한없이 자신의 초라함이 부각되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화이링-” “힘내세요”의 분에 넘치는(혹은 공허한) 자기 긍정의 메아리보다 ‘일단은 할 수 있는 만큼만 참고 버텨내자’의 가치관이 더 정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모락모락 마음속에서 불 지피는 이놈의 불안감의 고통을 해소하려면 우선 ‘내가 지금 뭘 하고 싶고 원하고 있는가’를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환경을 알고 나를 알자는 것. 이 회사가 싫은 건지, 이 일이 싫은 건지, 그냥 외로워서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생리전증후군(PMS)인지 말이다. 스스로 생각하기 힘겨우니까 애먼 타인의 입을 통해 알고자 하는데 필사적으로 자신의 고민을 설명한들, 그 문제의 본질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인 것이다. 다만 그것을 자각하는 것이 두렵거나 귀찮을 뿐이다. 문제가 파악되는 순간 행동강령도 자연스레 따라 나오기 마련인데, 그 행동강령에 따라 고민을 해결하려고 실천하는 게 싫은 것이다. 버거운 실천보다는 애매한 불안감 속에 있는 편이 훨씬 더 몸과 마음이 편한 거겠지. 타인의 지시를 받고 커온 우리로서는 더더욱 선택의 자유가 ‘애증’스러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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