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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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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갈등 엔터테인먼트

등록 2006-10-20 00:00 수정 2020-05-02 04:24

▣ 임경선

제발 이건 나 혼자만의 착시, 환청이 아니었기를 빈다. 지난 추석 연휴 내내 TV채널을 돌릴 때마다, 이동 중인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들을 때마다, 명절증후군 타령을 마주했던 것 같다. 타이틀은 명절증후군이요, 주연배우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덩달아 도움 안 되는 시누이와 밉상인 동서가 조연으로 등장하는 처절한 역할극 릴레이!
뭐 새삼 고부갈등이 추석만의 특별메뉴겠는가. 평소에도 고약한 고부관계는 전파의 섹시한 단골메뉴다. 단 한 번, 한 주말드라마에서 저런 신선한 고부관계라니! 했더니만 알고 보니 실은 사정 있는 모녀관계라 하여 김 팍 샌 적은 있었다만, 그것 빼놓고선 대중매체에서 흔히 보는 고부관계는 대략 피 튀기게 서로 괴롭혀야 기본을 했다. 뒤끝도 있고 잔머리도 난무하니 보는 이들로선 잘근잘근 씹는 맛이 좋을 게다.
아들/남편이라는 운명적으로 우유부단한 오뚝이를 중간에 두고, 그가 가장 사랑하는 두 여인의 격돌이라는 점도 얼마나 농밀하냔 말이다.

이렇게 고부갈등이 하나의 ‘정설’을 넘어 ‘엔터테인먼트’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말로는 추석이라는 극한 상황을 두고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모든 예측 가능한 갈등 시나리오를 그리면서 서로를 좀더 이해하라는 둥 등장인물들은 말들이 많지만, 공허한 방송용 리플레이처럼 들린다. 그리고 메인은 진흙 레슬링 이상으로 흥미진진하게 묘사되는 고부갈등의 해부. 자꾸 반복되다 보면 대중들의 반응이 무뎌지니 그 무뎌진 감각을 되살려주느라 매해 강도는 조금씩 더 세지는 양상이다. 매해 떠들어봐도 당최 개선이 안 되나 보다.

따지고 보면, 고부갈등처럼 출구를 찾기 어려운 갈등도 없다. 법도 공권력도, 남편도 해결해주지 못한다. 이 갈등은 ‘가족’ ‘효’라는 가치 속에서 묵인되고 다들 보고 있지만 쉬쉬하는 집안 문제이자 ‘여자들끼리 알아서 처리해야 할’ 혹은 ‘여자 고유의 특성이 만들어낸’ 여자들의 국지적인 문제로 되어 있다. 어떤 정신과 의사는 고부갈등으로 찾는 주부 환자들로 인해 전체 환자 레벨이 떨어진다(?)고 속내를 턴다. 주로 주부들 프로가 고부갈등과 명절증후군으로 도배되는 것도 이 맥락이다.

도움이 안 되면 가만히라도 있어야 한다. 대중매체가 보여주는 고부간의 자극적인 작태는 어째 부작용이 더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설마, 고부 당사자들인 우리가 지켜보면서 “이야, 저런 악덕 시어머니(혹은 몹쓸 며느리) 같으니라구. 난 절대로 저러지 말고 내 며느리(시어머니)한테 잘해야지”라는 자성의 기회를 준다고 생각하면 오, 그건 너무 나이브한 생각! 자고로 불완전한 우리 인간은 개선에 대한 의지보다 현상 유지에 대한 합리화가 훨씬 더 자연스럽고 편안한 법이다.

“흠, 내가 그래도 저기 저 시어머니(며느리)보단 백배 낫네. 나 정도면 요즘 세상에 정말 보기 드물게 이해심 많은 시어머니(며느리)라구!” 이러면서 양심의 꺼림칙함을 해소하려 할 것이다. 이렇게 대중매체가 하나의 기준(?)을 친절히 제시하며 갈등 허용범위를 넓혀주니(이 정도면 양반이야. 그런 줄 알고 참아) 이것이야말로 말리는 시누이 이상으로 속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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