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친한 선후배가 같이 일한다는 함정

등록 2006-09-13 00:00 수정 2020-05-02 04:24

▣ 임경선 칼럼니스트·Http://www.catwoman.pe.kr

좋은 선후배 관계로 알고 지내던 두 사람이 한 조직에서 상하관계로 같이 일하게 되면 꼭 말이 들려온다. ‘후배’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전화 끝머리에 “선배가 알고 보니 사이코였다”고 하소연하고, ‘선배’는 메신저로 말을 걸곤 “아… 요새 너무 피곤해. 완전 하극상이야”라며 더 편하게 후배를 욕할 수 있는 정황인지 슬쩍 떠본다. 이 두 사람, 한때는 모이면 손 부여잡고 각자의 상사와 부하를 욕할 때 맞장구쳐주던 사이였다. 나이 차이만 좀 날뿐이지 둘은 정말 쿵작이 잘 맞았다.

이 두 사람은 결코 그냥 같이 놀다가 갑자기 일도 재미있게 함께하자고 뭉친, 그런 아마추어들이 아니었다. 둘은 제휴사 관계라 같이 일하기도 했고 상대방이 일하는 모습도 봤고 타인의 검증도 여러 차례 받은 터였다. 그래서, 선배는 후배에게 말했다. 그 정도면 일도 빠릿빠릿하게 하고, 나한테 개개지 않으면서도 자기 줏대가 있다는 게 쓸 만해. 유머감각에다 붙임성도 있으니 나도 즐거울 테고. 게다가 내가 약한 분야에 대해 꽤 잘 알잖아. 음, 좋았어! 후배는 말한다. 형, 언니, 혹은 선배가 최소한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인 건 아니까 적어도 날 내치진 않을 거야. 생판 모르는 사람 밑에서 일하는 것보다야 안전하겠지. 둘은 의기투합해버리고 만다.

그런데! 어느덧 ‘줏대’는 ‘하극상’으로 바뀌고 ‘훌륭한 인간성’은 ‘비굴한 무능력’으로 비쳐진다. 그들이 회사원이라면 둘 다 잘 보여야 하는 상사가 존재하니, 관계는 치명적인 삼각관계로 치닫기도 한다. 후배는 선배가 자신의 공을 가로챈다고 비난하고, 선배는 후배가 특별한 보호를 몰라주고 도리어 다른 직원들을 선동한다고 이를 간다. 만약 선배가 회사의 대표이거나, 둘이 동업을 하는 것이라면 아킬레스건은 분명 욕망과 돈이다.

사이를 틀어지게 만드는 이런 장치를 배제해도 인간관계란 원래 너무 가까워지면 장점보다 단점이 더 쉽게 보이기 마련이다. 게다가 상대방이 업무적으로 유능한지 이 또한 막상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게 오래도록 내려온 진리이다. 하지만 역시 이 관계의 가장 큰 함정은 근본적으로 두 사람이 ‘친했다’라는 데 있다. 친하다는 것은 조금만 발을 잘못 디디면 우습게 보인다. 어느 순간 ‘권위가 안 선다’로 전이된다.

그래서 평소 절친했던 선배가 (후배가 깡충깡충 뛰며 좋아해주길 기대하며) 같이 일하자고 호쾌하게 말할 때 우리가 망설이는 이유는 그 회사의 연봉이 마음에 안 들어서가 아니라 내심 그를 ‘내 상사’로서 그릇을 재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인으로선 괜찮지만 마누라로서는 좀?’ 같은 야릿한 마음이랄까.

나중에 ‘왜 멀쩡히 잘사는 나를 데려가서…’라고 투덜거리며 원망하기 전에, 30%는 실망할 각오를 해두는 게 좋다. 선배는 후배를 완전히 ‘잡을 수 있나’ 냉정하게 자기 평가를 해야 한다. 정치학의 패권안정 이론을 참고해봐도 좋다. 후배는 선배가 사탕을 준다고 무조건 따라가지도 말고. 인간성? 너무 좋아버리면 욕도 시원하게 못하니 ‘이중고’를 겪게 된다. 한마디로, 고만고만하게 사람을 데려가고 데려오다 보면 후폭풍은 불기 마련이라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다는 말씀.

한겨레 저널리즘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