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경선 칼럼니스트·Http://www.catwoman.pe.kr
마초들을 저 멀리서도 단박에 알아보는 이유는 그들이 먼저 알아서 ‘기 센 여자‘(이하 기센녀)들을 싫어하는 광선을 뿜어주기 때문이다. 입 걸고 말발 서고 자기 주장도 강해 실제보다 과대평가(다른 말로 과다요구)받는 기센녀들은 마초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불쾌해진 그들은 가지각색의 방식으로 ‘잘난 척하지 마’ ‘나대지 마’ ‘까불지 마’라고 본능적인 적대감을 표현한다.
일하면서 만나게 되는, 우월감 반 열등감 반의 ‘꼬인’ 마초는 그녀와 같은 직급 혹은 그 아래임에도 걸핏하면 호칭에 ‘님’자 빼고 말꼬리를 흘려 반말을 남발하며 시비를 건다. 그 와중에도 꼭 잊지 않고 자신의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것으로 보아 굴복하는 여자가 에로틱한 모양이다. 지적이고 답답한 마초는 그녀들의 삶의 방식을 집요하게 분석하고 평가하려 들고, 지적 허영심만 있는 마초라면 면전에서 무시하려 애쓸 것이다. 돈 많은 마초도 마찬가지로 기센녀의 존재를 부정하려 하는데, 인정한다 해도 지네들한테 귀엽게 보이려 까분다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인물이 반반한 기센녀들은 바람둥이 마초의 정복욕을 자극할 것 같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임스 본드의 판타지 월드일 뿐이고, 가장 피곤한 것이 어설프게 미국물 먹은 마초와 머리 나쁜 ‘꼰대’ 마초인데, 전자는 입냄새 나는 지루한 중년 공화당원처럼 설교질이고, 후자는 욕구불만 여드름 중3 학생처럼 말도 안 되는 주제로 논쟁을 구걸한다. 아, 그렇다고 게이 마초들과 언니·동생 하며 무작정 친해지냐 하면 꼭 그렇지도 못한 것이, 최소한 미의식이라는 것을 가진 그들에겐 이 대 센 언니들은 천박하고 버거운 존재로 비쳐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한편, 마초들의 센서가 부지직 반응하는 것은 후천적으로 기가 세질 수밖에 없던 평민 여자들에게만 국한되는 것 같다. 진짜 막강한 기를 자랑하는 태생적 권력을 가진 ‘공주’들에겐 웬일이니, 너무 관대하다. 그렇다면 왜 실속 없는 그녀들만 눈엣가시처럼 미워할까? 기센녀가 마초의 존재감을 필요로 안 하고 무시하니까? 그것보다 이건 자신과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과 우연히 만났을 때의 짜증과 유사하다.
그들은 서로를 통해 ‘딱 어떤 냄새를 맡는 순간’, 저 깊숙이 냉동고에 억압해놓고 잊어버리고 있던 감정이 불쑥 뛰쳐나와 당황하는 것이다. ‘난 너를 알아.’ 딱 보는 순간 겹겹이 가면을 쓰고 감춰두었던 서로의 치부를 알게 되고, 상대가 또한 나의 그것을 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난 너의 두려움과 욕망과 수치심과 굴욕을 알아.’ 환상을 가지고 미화해가며 좋아하는 게 정상인 남녀 관계 속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절절하고 혼자 치열해서 초라해지는 모습이 투영돼 보이는 것은 지극히 피곤하고 민망하고, 무엇보다 썩 유쾌하지 못하다. 그저 어른스럽게 ‘레이디스 앤드 젠틀맨’처럼 사교적으로 잘 지내고 싶다만 자꾸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 이토록 다르고, 또 이토록 같은 서로를 통해 보이니까 마음이 긁히고 만다. 우린 서로에게 동물적 후각이 너무 발달해 있는 게 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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