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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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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연말정산

등록 2006-12-28 00:00 수정 2020-05-02 04:24

▣ 임경선 칼럼니스트·Http://www.catwoman.pe.kr

개인적 이야기 좀 하겠다. 2006년을 통틀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내가 여태껏 상당한 ‘피플 플레저’(People-Pleaser·나보다도 남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무리하며 노력하는 사람)로 살아왔다는 깨달음이다. 어릴 적부터 전학을 하도 많이 다녀 새 환경에 빨리 받아들여지고자 애썼던 습관이 남아서 그랬을까? 아니면 아무리 뭘 잘해와도 시원하게 칭찬 한 번 안 해주신 부모님 탓이었을까? 결과적으로 학교 다닐 적엔 선생님들께 딸랑딸랑 종을 울렸고 회사에선 흡족해하는 상사의 표정을 보기 위해 신체 일부의 마비 증세를 무시했다. 연애할 때도 간·쓸개 다 빼주고, 분위기 업되면 빳빳한 현금도 빼줬던 것 같다.

그렇게 착하고 친절했던 이유는 내 오른쪽 어깨에 천사가 앉아 있어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 대가로 사랑받고 감사받기 위함이었다. 내 행동은 의무감이나 죄책감에서 비롯된 친절함이었으니 상대의 욕구에 대한 진정한 관심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 기대했던 만큼 안 돌아오면 상처를 받았다. 가슴속 깊이 분노를 차곡차곡 쌓다 보면 삐쳐나오기도 했다. 화내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니 입 다물고 토라질 수밖에. ‘내가 이유 없이 삐진 것 같으니 너도 괴롭지? 그러니까 눈치껏 좀 알아서 내가 원하는 걸 해줘! 꼭 내 입으로 민망하게 말해야 되겠니?’

다행히 상대가 눈치채고 원했던 감사를 되받았다 해도 여전히 섭섭함을 느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겨우 돌아오는 게 이거냐?’ 내 자신을 포기하면서까지 베풀어서 남은 것은 더 공허해진 마음과 더 커진 수치심뿐이었고,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해도 오히려 더 큰 투자를 강행해버리고 ‘이 정도 해주면 충분하겠지?’라며 상대에게 호의를 가장한 부담만 줬다. 속으로는 분노를 느낀 채 겉으론 친절히 행동하는 모순을 발견하고 난 양자택일을 해야만 했다. “내 욕구를 포기시킨 스스로에게 화를 낼까? 아니면 내 욕구를 우선시한 대가로 상대에게 상처를 줄까?”

그리고 마침내 나는 상대에게 화를 내는 쪽보다 상대가 나에게 화내는 쪽을 선택할 수 있었다. 또한 나 자신과 문제를 일으키느니 차라리 상대와 문제를 일으키기를 원하고 더 쉽게 감내할 수 있었다. 이 사고방식의 변화는 나라는 사람에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힘들었다. 통제력이 강한 채로 성장했으니 자신에게 어떤 일을 강요하는 것은 누워서 식은 죽 먹기였으니까 말이다. 남과 까칠해질 수 있는 상황을 내 능력(나를 희생시키는 능력)으로 해결하기가 이 세상에 제일 쉬운 것이었으니. 그런데 진정으로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위해서 ‘그 누구보다도 내가 제일 행복해야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난 정말 바보).

비로소 나는, 내 욕구에 충실하고도, 아니 다시 말해, 내 욕구에 우선적으로 충실해야만 상대와 무슨 문제를 겪든 잘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실한 감촉을 감지할 수 있었다. 아니 다시 한 번 제대로 말하겠다. 내가 나를 포기한다면 그 어떤 문제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이 단순한 사실을 체득하기 위해 참 먼 길을 돌아왔다.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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