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경선 칼럼니스트·Http://www.catwoman.pe.kr
개인적인 사정으로 지난 2주간 입·퇴원을 반복하게 되었다. 규모가 큰 개인병원이었다. 내 담당 주치의는 그 건물의 소유주, 즉 ‘왕’원장님이셨는데 놀랍게도 이 양반은 일주일에 7일 일하고 아침저녁으로 직접 입원실 회진을 빠짐없이 챙기며 환자에게 일일이 따뜻한 위로나 격려, 농담을 아끼지 않았다. 대학병원의 일렬종대 군대식으로 위엄 있게 등장하는, 그래서 긴장하며 화장실 가는 것도 참고 병상을 지켜야 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문화충격이었다. 맞아, 의료는 서비스업이었지. 고맙고 흐뭇했다.
그런 우리 천사표 원장님이지만 몇 달을 겪어보니 말 도중에 끼어들면 짜증을 내셨고, 환자가 토 달듯이 질문하는 것을 아주 싫어하신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성질 급한 나는 타이밍을 못 맞추고 매번 말씀 끝난 줄 알고 바로 질문을 던졌다가 낭패만 봤다. 해맑은 소년의 미소가 ‘썩소’로 변하면서 그는 내 질문을 무시한 채 당신의 말씀을 기어코 끝내셨다. 게다가 뭐든지 인터넷 검색을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의심 많은 성격이라 그 분야에서 알아주는 명의 앞에서 감히 논쟁조로 캐묻는 제정신 아닌 짓도 많이 했다. ‘내가 어련히 알아서 해주고 있는데 그런 소리는 어디서 또 주워듣고선….’ 원장님이 찝찝한 표정을 지으신다. 한편, 이건 순전히 내 자격지심에서 나온 망상일 수도 있으나, 그는 회진시 환자가 반듯이 앉아 방실방실 웃는 모습으로 맞이해주는 걸 원하는 눈치였다. 한번은, 방심하고 벌러덩 누워 있다가 순간 머쓱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한없이 자비로워 보이던 성부에게 골골한 환자가 가지는 궁금증, 어리광, 답답함 등을 다 포용해주기를 이상적으로 기대했다가 조금이라도 권위(?)의 벽이 나타나 그도 결국 ‘원 오브 뎀’(one of them)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껴지면 그게 그렇게 서러울 수 없었다… 라며 병상에 누워 넘쳐나는 시간 속에서 잡생각을 하고 있는데, 또 문득 든 생각. 나 역시 굳이 규정하자면 사이비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무면허 주제에 여러 매체를 통해 인생상담을 해주고 있는데, 그래도 최선을 다해 가급적 많은 이들에게 성실히 답장을 보내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누가 단편소설 분량의 ‘마이 라이프 스토리’를 구구절절 써 보내면 완전히 퍼져버린 암덩어리를 본 것처럼 황급히 다시 덮게 되고, “저 성격 급하니까 답장 빨리요”라고 끝맺음하는 일부 몰지각한 상담 메일에는 솔직히 눈에 핏대가 섰다. 내가 무슨 콜라 자판기냐. 반대로 한마디라도 살살 엉덩이 긁어주는 소리로 시작해주면, 수십 통의 메일 중 내 눈에 띈다고 하면 간사할까.
불특정 다수의 희로애락에 같이 일희일비하기에는 솔직히 정신과 몸이 못 견뎌내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지고 나니 나 진료 볼 때는 침통하게 얘기하다가 내가 나간 다음 환자가 들어가자 180도 쾌활 모드로 바뀌어 환자를 ^^로 맞이하는 우리 원장님에게 서운함을 느꼈던 내가 바보였다. 그러고 나니 2주간 지극정성으로 간호해주던 남편이 내가 퇴원한 뒤 바로 귀가가 다시 늦어진 것도 다 충분히 이해된다. 숨들은 다 쉬고 살아야지,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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