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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부부’가 사는 법

등록 2006-11-17 00:00 수정 2020-05-02 04:24

▣ 임경선 칼럼니스트·Http://www.catwoman.pe.kr

한두 회사 건너 하나쯤 있을 법한, 직장 내에서 부부처럼 행동하는 이들 ‘직장부부’는 매우 흥미로운 관찰 대상이다. 이들의 ‘솔메이트’(Soul mate)적 관계는 여느 남녀 간의 동료애에 비하면 한참 각별하고도 남는다.
직장부부는, 남자가 여자보다 직급이 위지만, 사수-부사수 정도의 한 직급 차가 대부분이다. 단, 여자 사원과 남자 대리의 조합은 소심한 연애질로 변질될 우려가 있어 해당이 안 된다. 두 사람 다 각자의 행복한 가정을 가진 기혼자이어야 하며, 회사에서는 엄연한 관리직이다.

고로 과장-부장, 매니저-디렉터, 부장-이사 등의 조합에서 찾기가 쉽다. 이 두 사람이 대체적으로 합심하면 팀 내의 일이든, 회사 전체의 일이든, 대부분의 일을 그들이 원하는 대로 돌릴 수 있는 자유로운 입장이다. 여자가 회의실에서 다른 팀원들과 회의하고 있으면 남자는 머리를 스윽 디밀고 농담하며 끼어들 수 있는 입장이고, 남자가 부하직원을 야단칠 때면, 여자는 옆에서 엄마처럼 감히 말릴 수도 있다. 종종 이 두 사람이 근무 시간에 함께 연기처럼 사라지면, 그것은 같이 담배 피우러 복도에 나갔거나, 매일 보면서 뭐 그리도 새로 할 말이 생기는지, 굳이 근처 커피숍에 가서 한참을 수군거리다 주섬주섬 돌아오는 것이다.

그들은 무늬만 상사와 부하지, 본질적으로는 친구 같은, 부부 같은, 파트너 같은 그런 (자기들만) 유쾌한 관계다. 그런 두 사람이 조직 내의 우두머리일 때, 그 밑에 있는 직원들은 다소 당혹스럽다. 겉으로만 보았을 때는 부하인 여자가 더 기가 세기 때문이다. 직장부부의 아내는 대체적으로 괄괄하고 입이 걸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여자의 매력을 이용할 줄 아는 아주 머리가 좋은 여자인 것이다. 베갯머리 송사가 아닐 뿐이지, 남자는 이런 반말을 찍찍 섞어가며 말하는, 야누스적인 그녀에게 조정당하는 것을 즐기며 기꺼이 여자의 주장을 들어주고 때로는 그녀의 돌출행동에 대해 방패막이 되어주곤 한다. 그러니 다들 실세는 그 여자라고 수군거리며 여자 쪽에 ‘민원’을 청하는 뱀 같은 이들이 생겨난다. 우직한 직원들이라면 속으로 “쟤넨 대체 뭐야?”라고 개탄하고, 순진한 처녀라면 그들의 노골적인 부부 행각에 “어쩜 저럴 수 있어요!”라며 그들의 진짜 남편과 아내를 한참 불쌍히 여긴다. 하지만 직장부부들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노골적일 수 있는 것도 그 안에서 ‘나름의 권력자’이니까 가능했던바, 그들의 태평천하가 계속되는 한 아랫것들이 뭐라고 뒤에서 시부렁거리든 말든 알 바가 아니다. 그걸 신경쓰기엔 나름 바쁘게 밥값을 하고 있는 인물들인지라.

그러나 인간관계는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여자가 도를 넘어 기어오르면 남자가 남편이 아닌 상사로 돌변, 벼락을 맞아 이혼당할 수 있으며, 한쪽이 부서 이동을 하거나 퇴사를 하면 마법 같은 사랑도 돌연 사라진다. ‘배니싱 트윈(Vanishing Twins) 신드롬’처럼 한 쌍생아가 저 멀리 가버리면 남겨진 쌍생아는 덩달아 맥을 못 추는 것이다. 그러나 더러는 시간이 지나면 적당한 파트너를 새로 만나 ‘재혼’하기도 한다.

한겨레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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