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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와 프리랜서

등록 2006-11-03 00:00 수정 2020-05-02 04:24

▣ 임경선 칼럼니스트·Http://www.catwoman.pe.kr

월급쟁이를 멈추고 현재 프리랜서를 하고 있는 나의 인간관계에는 한 가지 변화가 있는 데, 그것은 회사와 관계된 사람들을 하나둘씩 고통 없이 잃어가는 반면 그만큼 프리랜서들을 하나둘씩 수줍게 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먼 데로 유배당한 것도 아닌데 월급쟁이들은 “슬슬 복귀하셔야죠?”라며 지금 헤드헌터들이 바삐 움직이는 ‘시즌’이라고 귀띔하며 잡아당기고, 프리랜서들은 “진작에 ‘이쪽’으로 넘어오실 줄 알았다니까. 조직에 갇혀 있을 양반이 아니었지”라며 자영업계에 확실하게 몸 풀라고 방석을 깔아준다. 어쩌다 보니, 노처녀 친구들과 애 딸린 아줌마 친구들 사이에 낀 애 없는 유부녀로서 느꼈던 회색지대에 또 와 있다.
그렇게 이 팀 저 팀을 회색분자처럼 오가며 관찰하다 보면, 주로 권태롭고 고통스러운 일상을 보내는 월급쟁이들이 모이면 업계 가십을 가열차게 공유하면서 심리적 소속감을 느끼고 위안을 받는 듯하다.

이 지루한 일상 속에 벌어지는 다양한 직장 내외의 시트콤적인 정황은 가볍기로서니 진정효과는 제법 크다. 한편, 프리랜서들은 주로 혼자 일하는 시간이 많기에 태생이 과묵하고 고독하여 업계 내 최신 비화는커녕 그저 지네들처럼 ‘혼자 일하고 혼자 밥 먹는’ 무수히 많은 다른 동족들이 곳곳에 의외로 많이 서식하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 해도 안심한다. 다들 조금씩은 외롭고 조금씩은 불안했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들은 변심해 있다. 그런데 각 그룹의 변질자들은 학생운동을 선두지휘하다가 갑자기 학교 도서관 구석에 처박혀서 토플 공부하는 것을 들킨 사람처럼 웬일인지 자신 없어 보인다. 프리랜서 예찬론을 펼치던 이들은 “, 어쩌다 보니 다시 들어갔네요. 아는 선배가 하도…”라고 계면쩍어하며 그토록 조롱했던 조직의 명함을 건넨다. 한편 “나, 나와버렸어”라며 갑자기 짠 나타나는 전직 월급쟁이들도 있다. 훌훌 모든 것을 털어낸 듯 역시 표정은 홀가분해 보이지만 “그래, 잘 나왔다”라며 퇴사를 바로 축하하고 수긍해주지 않으면 표정이 어쩐지 불안해질 기세다.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자기가 있는 곳이 안전한 곳이라고 남에게 설득하고 또 스스로도 믿고 싶어하면서 다른 곳에 희망을 걸어본다. 막상 용기 내서 가고 나면 또 불안해서 자꾸 되돌아본다. 소극적 예로 한 후배는, 빡빡한 톱니바퀴 같은 대기업 조직에 지쳤다며 가족적 분위기의 아담하고 자유로운 회사를 찾아갔더니만 자유는 ‘체계가 엉망인 불편함’으로 간주되고, 가족 같은 편안함은 ‘긴장감 제로’로 느껴져서 이제는 또다시 피 끓는 인간들로 북적대는 큰 조직에 흥분을 느낀다고 자백하며 어디 없냐고 캐묻는다. 또 다른 친구는 갑갑하고 보수적인 업종에 다년간 종사하다가 “남들은 놀면서 일하는데 왜 나만…” 이러면서 일명 ‘화류계’로 옮겨가서 처음엔 같이 퍽이나 잘 놀다가 어느덧 거기 인간들이 ‘싼마이’로 보여서 상종을 못하겠다며 “나도 머리 좀 써가면서 일하고 싶다”고 다시 뛰쳐나오더라. 왜 이렇게 부질없이 흔들릴까, 이 가을에 속상해하는 분이 있다면 염려 마라. 다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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