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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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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견의 감시자

등록 2001-03-06 00:00 수정 2020-05-02 04:21

언론윤리를 말할 때 흔히 인용되는 말이 ‘두개의 머리를 가진 감시견’입니다. 언론은 바깥쪽을 향해 짖어대는 머리와 자기 안쪽을 향해 짖는 두개의 머리를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바깥세상에 대한 감시와 견제 못지 않게 언론 스스로의 내부 성찰과 반성이 중요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를 키운 브래들리(M.J.Bradley)가 했다는 이 말은 언론인들이 늘 가슴 속에 담아두어야 할 소중한 금언입니다.

그러나 이 두개의 머리를 갖기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해 다른 사람의 사소한 허물은 준엄하게 질타하면서도 내 눈의 들보를 보는 데는 별로 익숙하지 않은 게 언론인의 생리입니다. 그렇다고 언론사끼리의 쓴소리가 잘 통용되는 분위기도 아닙니다. 이제는 너무나 진부한 말이 돼버린 ‘침묵의 카르텔’ 속에서 언론은 서로가 서로를 봐주는 행태를 계속해 왔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우리 언론환경에서는 이른바 ‘감시자에 대한 감시’(watching the watchdog)가 무엇보다 절실히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언론의 상호비판을 바라보는 눈길이 모두 고운 것만은 아닙니다. “쓸데없이 남 비판하려 하지 말고 너희들이나 잘해라”는 독자(시청자)들의 비아냥은 오히려 점잖은 편에 속합니다. 다른 언론에 대한 비판을 통해 뭔가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음습하고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사시의 눈초리도 번득입니다. 비판을 당한 상대방 언론은 곧장 ‘음해론’ 내지 ‘음모론’으로 맞받아치기도 합니다. 의 경우도 ‘족벌언론 황제, 브레이크가 없다’는 기사 등과 관련해 이런 비판을 무수히 많이 받았습니다. 특히 이 보도와 관련해 소송을 제기한 동아일보쪽이 “언론인의 양식”과 “기업운영의 윤리”를 비판한 대목은 매우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정녕 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본격적인 신문비판에 선뜻 나서지 않았던 방송사들도 최근 들어 족벌언론의 폐해에 대해 본격적인 메스를 들이대고 있습니다. 각 신문들도 매체비평란을 고정란으로 신설했거나 신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언론의 상호비평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할 조짐이 엿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기류를 무척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렇게 폄하하기도 합니다. “신문과 신문, 신문과 방송들이 서로 못잡아먹어 물고 뜯게끔 만들어지는 신판 ‘글래디에이터 한마당’도 벌어지고 있다”( 류근일 논설주간), “야당은 언론 내에서도 ‘신문과 방송, 그리고 신문사간의 갈등, 메이저 신문과 기타 신문간의 갈등’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 휩싸여 있는 것 같다”( 김대중 주필).

과연 최근의 언론의 상호비평이 ‘서로를 못잡아먹어 안달이 난 행위’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글쓴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신문이 방송사 등을 잇따라 비판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는 자신들의 보도 의도를 은연중에 고백한 것은 아닐까요?

백보양보해 언론개혁이라는 화두를 놓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언론사간의 첨예한 입장차이와 갈등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고 합시다. 분명한 것은 그런 ‘투쟁’이라면 백번이라도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담합에 의해 유지되는 ‘거짓평화’보다는 오히려 서로 처절하게 ‘투쟁’하는 편이 훨씬 낫기 때문이지요.

한겨레21 편집장 김종구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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