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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디사, 제2의 퐁니·퐁넛

등록 2006-06-08 00:00 수정 2020-05-02 04:24

▣ 고경태 편집장 k21@hani.co.kr

우리가 ‘밀라이’보다 한 달 앞섭니다,
라고 자랑한다면 헛됩니다. 역사는 1등만을 기억한다는데, 왜 사람들은 2등만 기억하냐고 투정한다면 유치합니다.
요즘 외신은 ‘하디사 학살’을 비중 있게 취급합니다. 지난해 11월 이라크 서부의 한 마을에서 미군 해병이 저지른 참혹한 인간사냥을 일컫는 말입니다(14~16쪽 참조). 이를 인용 보도하는 국내 언론엔 다음과 같은 비유가 빠지지 않습니다. ‘제2의 밀라이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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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3월16일 베트남 중부 꾸앙응아이성 선미(작전지도명: 밀라이) 마을에서 미군이 500여 명의 부녀자와 아이들을 죽인 사건입니다. 역사적 교훈을 주는 유명한 일이어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미군에게 ‘밀라이’가 있다면 한국군에겐 ‘퐁니·퐁넛’이 있습니다. 이른바 퐁니·퐁넛촌 학살. 밀라이에서 차량으로 3시간도 안 걸리는 지역에서, 한 달 먼저 터졌습니다. 이것이 부끄러운 ‘1등’의 내용입니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군 수사당국이 보고서를 작성했으며 관련된 장교들이 조사를 받았고 증거사진이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1999~2000년 의 보도로 처음 알려졌습니다. 하디사 학살은 그 정황과 결과가 퐁니·퐁넛에서의 것과 대단히 흡사합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2005년 11월19일 아침 7시15분. 이라크 서부 안바르주 북서쪽 하디사 마을 인근에 주둔하던 미 해병 1사단 1연대 3대대 킬러중대 소속 병사들은 정찰 중이었습니다(하디사). 1968년2월12일 아침 8시15분. 베트남 중부 꾸앙남성 디엔반현 퐁니·퐁넛 마을 인근에 주둔하던 한국군 해병 청룡여단 1대대 1중대 소속 병사들은 도보 정찰 중이었습니다(퐁니·퐁넛).

도로매설 폭탄에 의해 차량이 갑자기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한 명이 죽고 두 명이 다쳤습니다(하디사). 갑자기 어디선가 총탄 한 발이 날아왔습니다. 한 명이 다쳤습니다(퐁니·퐁넛).

미군 해병들은 현장에서 130여m 떨어진 인근 가옥으로 접근했습니다(하디사). 한국군 해병들은 현장에서 1km 떨어진 마을로 접근했습니다(퐁니·퐁넛).

한집 한집 차례로 들어가 노약자와 부녀자, 아이들을 향해 닥치는 대로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졌습니다(하디사). 민가를 수색하며 노약자와 부녀자, 아이들을 모두 밖으로 나오게 했습니다. 그러곤 총을 갈겼습니다. 땅굴에 수류탄도 던졌습니다(퐁니·퐁넛).

24명이 죽었습니다(하디사). 60명 이상이 죽었습니다(퐁니·퐁넛)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장교 사이에 퐁니·퐁넛 사건은 ‘제2의 밀라이’로 회자됐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하디사 학살은 ‘제3의 밀라이’로 수정해야 옳습니다. 아니 ‘제2의 퐁니·퐁넛’으로 부르는 게 더 좋습니다. 밀라이만큼이나 퐁니·퐁넛도 알고 기억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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