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475

등록 2004-12-10 00:00 수정 2020-05-03 04:23

▣ 배경록/ 한겨레21 편집장 peace@hani.co.kr

며칠 전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이색적인’ 행사 하나가 열렸다. 국회 특성상 법안이나 정책을 다루는 행사가 열리는 게 보통인데 이날 행사는 좀 달랐다. 열린우리당 소속 일부 의원들이 ‘미래사회를 위한 민주화 세대의 역할’이란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는데, 의원들이 1957~58년생이라는 점이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아침이슬’이란 모임까지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40대, 70년대 학번, 50년대생’을 가리키는 ‘475세대’가 사회의 허리로서 이념과 갈등을 통합하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임과 행사 취지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정치권에서마저 세대를 구분하고 특정 세대의 역할론을 내세우는 것이 왠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그들 스스로도 “4·19, 6·3, 386세대가 민주화 운동을 통해 세상을 바꿨다는 성공을 경험한 반면 ‘475세대’는 그렇지 못했다”고 자조하는 데서 모임과 행사가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475세대’와 관련해서는 이미 인터넷 사이트(www.people475.com)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고, 인터넷에 뜬 글을 모아 책이 출판됐으며, 그 시절을 상징하는 통기타 가수들의 공연이 줄을 잇고 있다. 혹시라도 ‘475’ 정치인들이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정치권 내에서의 입지에 신경쓰면서 그들만의 ‘성공’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얼마 전, 검사 출신의 한 야당 국회의원이 대정부 질문을 하면서 여권의 386세대를 ‘베짱이’에 비유하며 비아냥거려 물의를 빚었던 일이 생각난다. 386세대가 어떤 세대인가. 80년 광주를 경험하고 87년 6월항쟁의 현장을 몸으로 부닥친 ‘역사적인’ 세대가 아닌가. 또한 그들은 지금의 정보화 시대를 열어 이를 주도하고 있는 세대이며, 정보화된 사회 각 부문에서 여론을 생산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그런 386세대조차 “시원한 그늘에서 놀기만 하고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해 정열은 있으나 위태위태한 세대”라는 수모를 당하고 있다. 심지어 임금님을 벌거벗기는 비단옷을 짜주고 큰돈을 챙기는 사기꾼으로 묘사될 정도로 폄하되고 있다. 사회 통합의 가교 역할을 외치며 앞날을 도모하겠다는 ‘475’ 정치인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의지와 관계없이 언제든 세인의 입길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12월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안 상정을 둘러싸고 여야 의원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고성이 오고 가는 등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많은 국민들은 지난 3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던 국회 본회의장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구태를 되풀이하는 이날의 국회 상황을 지켜보면서 ‘475’ 정치인들이 지금 세대를 구분하고 역할을 고민하는 것은 무척이나 사치스러워 보였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미 그들 눈앞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는 것에서 찾으면 간단한 일처럼 보인다. 부디 그들이 의 가사 내용처럼 “내 맘의 서러움 모두 버리고 아침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