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정애 / 평화여성회 국방팀장
타이 파타야. 끝없는 수평선이 펼쳐지고 옥색 바다가 환상적인 도시.
특히 이 땅에 한파가 몰아치는 추운 겨울날, 털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바닷물에 뛰어드는 기분은 가히 파라다이스를 연상시킨다. 밤에는 환락의 도시로 탈바꿈하는 도시. 한국 남자들끼리 가면 반드시 들른다는 ‘라이브 쇼’를 비롯해 성에 관한 한 모든 체험을 다 해볼 수 있다는 곳. 거리 곳곳 불야성 속에서 덩치 좋은 백인 남자들이 자그마한 체구의 타이 소녀를 끼고 있는 장면이 아주 흔하게 연출된다.
파타야의 밤, 우리는 당황했으니
지난 여름 여성회의차 들른 그곳에서 가이드는 우리에게 파타야의 밤을 보여준다며 그 일대를 구경시켰는데, 한국인들이 자주 들르는 듯한 한 업소에서는 앳된 소녀들이 진을 치고 앉아 술을 팔고 있었다. 한국 가요 에 열심히 몸을 흔들어대는 그녀들을 보면서 우린 매우 착잡했다. 마치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멀뚱멀뚱 앉아 있다가 주스 한잔이 비기를 기다려 우린 황급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네들 역시 떼거리로 몰려들어 마치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 하는 동양 여자들의 시선이 무척이나 부담스러웠으리라. 언뜻 머리를 스치는 생각. 외국인들에게는 우리 관광도 이런 모습으로 비치는 게 아닐까. 단지 밤의 풍경밖에 보여줄 게 없는 ‘기생관광’의 나라로 말이다. 가이드는 그 소녀들이 엄청 효녀라고 했다. 돈 벌어 동생들 학비 대고 집안 생계 꾸리고…. 어디선가 많이 듣던 소리다.
상품화와 사유화를 핵심으로 하는 자본주의는 돈으로 남의 몸뚱어리를 사고팔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로, 여성들에게 매춘을 통해 자신을 성 상품화하라는 압박을 가하는 이념이다. 타이와 조금 다른 면이 있다면 우리네 성 상품화에는 일제시대부터 시작된 군사주의 문화도 한몫한다는 사실이다. 군사주의 문화란 군대의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이 군대 밖 사회에서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군대의 획일성, 권위주의, 폭력성이 전제된다. 군사주의는 전쟁 체제를 합리화하는데, 전쟁 체제는 가부장제와 성차별주의를 강화하는 메커니즘이다. 전쟁에서 여성은 전리품의 하나로 취급돼왔다. 어릴 적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정복을 마치고 돌아오는 로마 함선에서 군장을 풀어헤친 로마 병사들이 배 밑창에서 결박당한 채 비틀거리는 여자들을 앞세워 갑판 위로 올라온다. 밑창으로 내려가는 입구에서 서성이는 로마 병사들과 진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일제 식민지를 겪으면서 일본식 군대문화를 그대로 답습한 역사를 갖고 있다. 메이지 시대, 서구식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일본 국가는 가족 중 남성의 성적 욕구를 해결하여 공장과 가정에서 생산과 재생산을 극대화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공창제를 실시했는데, 이것이 군대에도 적용된 것이 군 위안소였다. 병사의 모든 자주성을 짓밟고, 일체의 자유를 박탈하여 가혹한 군기에 복종시키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한 일본 제국주의 군대는 병사들의 불만을 완화시키는 기제로 군 위안소를 활용했다. ‘변소’에 간다며 위안소 앞에 길게 줄지어 늘어선 일본군 사진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들에게 군표를 돈으로 알고 받아챙겼다는 조선 여성들을 일본인들은 아직도 공창으로 기억하면서 기생관광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 정부가 수립된 뒤, 독립주권 국가임을 대내외에 천명한 상황에서도 일본의 추억은 계속되었다. 한창 젊은 시절, 일본 군대에서 먹고 자란, 머릿속까지 일본화된 일본군 출신 장교들에 의해 한국전쟁 때는 이름까지 그대로인 위안소가 버젓이 설치되어 운영되었다. 그리고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서슬 퍼런 군홧발로 주한미군 기지촌 수립에 앞장서 이 땅의 어린 딸들을 미군의 성노리개로 그곳에 떠다밀며 “너희들은 애국자”라 했던 군사정권은 여성의 몸에 대한 최소한의 자존심을 짓밟아버린 인권유린 정권이었다.
자본주의와 군사주의 문화에 우리 어린 딸들의 몸이 망가지고 있다. 몸은 인격이자 자존심이다. 스스로 함부로 굴려서도, 대접받아서도 안 된다. 자신의 힘으로 지켜내고 또 어떤 외부의 부당한 압력으로부터도 지켜내야 할 내 몸의 주권. 너무 당연한 명제임에도 우리 모두가 자본주의와 군사주의 문화에 마냥 찌들어 이를 잊고 사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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