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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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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길

등록 2004-09-24 00:00 수정 2020-05-03 04:23

▣ 배경록/ 한겨레21 편집장 peace@hani.co.kr

한가위를 시샘하듯 가을비가 오락가락을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어김없이 들판의 곡식과 과일은 익어가고 모처럼 넉넉함을 느낄 수 있는 추석 명절이 우리를 맞는다. 혹시나 했지만 올해도 역시 고향가는 발걸음은 그다지 가벼워 보이질 않는다. 경기는 되살아날 줄 모르고, 국가보안법과 과거청산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가 갈등하고 있는 모습은 설레야 할 고향길을 답답하게 만든다.

명절 분위기에 들떠 넉넉한 마음을 가지려 해도 주머니가 가벼우면 괜스레 힘이 빠지는 법이다. 내수 침체가 계속되면서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 건설업 부문의 고용부진 때문에 신규 취업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고 하니 서민들 주머니 사정이 오죽할까 싶다. 정부가 올해 목표한 40만개 일자리 창출이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분석도 있고 보면 추석만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차례 음식과 고향 선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지갑만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떠올리면 안타까움이 더한다.

그러나 이 힘겨운 시절을 함께 살아가는 부유층들은 여전히 부동산 투기에 골몰하고 있으니 딴 세상을 사는 사람들 같다. 건설교통부가 최근 적발한 투기혐의자 가운데는 7살짜리 아이가 수도권 임야 1만평을 사들였고, 한 도시인은 수십 차례에 걸쳐 수십만평의 농지와 임야를 사들였다고 한다. 한술 더 떠 그들은 “상류층을 공격하는 노무현 정부에 불만을 품고 돈보따리를 싸 미국 LA와 뉴욕, 중국 상하이의 부동산 매입에 나서고 있다”는 미국 시사주간지 의 보도까지 접하니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명절에 들르는 고향땅이 투기꾼들 손에 한뼘한뼘 넘어가는 것을 지켜보면 정말 고향 갈 맛이 싹 가실 것 같다.

빈부격차의 갈등은 내재돼 있을 뿐이지만 심각하게 표출하는 것도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국가보안법과 과거청산을 둘러싼 갈등이 그것이다. 어찌 보면 한번쯤 겪어야 할 진통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역동적이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꿈틀대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아직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 것을 세계는 이상하게 여기고 있다고 하지 않던가. 5천년 역사와 식민, 전쟁, 쿠데타, 민중항쟁으로 점철된 근현대사가 그 역동성을 입증하는데도 우리 문학이 세계 무대에서 아직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분명 이상한 일이다. 번역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기는 하지만. 여하튼 최근의 이념대결을 지켜보면서 우리 문학이 드디어 노벨문학상을 거머쥘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는 ‘엉뚱한’ 위로를 받으려 애쓰게 된다.

무거운 얘기로 고향길을 더욱 무겁게 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그래서 추석 연휴기간 동안 지갑 열지 않고 휴식과 평온을 얻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자기관리 및 스트레스 조절, 동기부여 교사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마이크 조지(Mike George)가 최근에 쓴 (거름 펴냄)에 나오는 얘기다. “당신의 마음에 내면의 평온함을 즐기기 위한 방이 있다고 상상해보라. 그리고 그 방을 어떻게 꾸밀지 마음속에 떠올려보자. 어떤 색이 마음을 평온하게 해줄까? 어떤 물건들을 집어넣을까? 어디에 놓을까? 평온함을 자아내는 물건들로 방을 가득 채워라. 그리고 활기를 되찾고 싶을 때마다 마음속의 그 방으로 가보자.”

넉넉함과 휴식이 기다리는 고향길, 잘 다녀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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