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편집장 배경록 peace@hani.co.kr
잡지를 제작하다보면 이런저런 돌발 상황 때문에 표지이야기나 특집 같은 비중 있는 기사를 순발력 있게 바꿔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게 마련이다. 북한 용천역 폭발사고가 알려진 게 목요일 밤이었다. 접근이 불가능한 현장이기는 하지만 매주 월요일 원고를 최종 마감하는 탓에 표지이야기를 바꾸는 데는 비교적 여유가 있어 보였다. 때마침 중국에 체류 중이던 취재팀을 단둥으로 급파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피해 규모와 사고 원인 등을 파악하는 게 한동안 불가능했고, 현장 사진을 손에 쥘 수 없는 답답한 시간이 꽤나 흘러갔다. ‘과연 무엇으로 지면을 채울 수 있을까’ 하는 불안과 함께 북한 사회의 폐쇄성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이틀여가 지난 뒤 북한 당국이 참사 소식을 공식 발표하고 외신을 통해 현장 사진이 속속 도착하면서 사고 전파에 왜 그렇게 시간이 걸렸는지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번 참사는 1977년 11월 일어난 전북 이리역 화약열차 폭발사고와 너무나 흡사해 안타까움을 더한다. 지금의 북한 경제력과 비슷했던 30년 전쯤 그때로 되돌아가보면 피해 규모와 북녘 동포들이 겪고 있을 고통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철도가 놓이기 시작한 일제시대부터 도시는 역을 중심으로 발달하기 시작했고, 용천역 주변 또한 마찬가지여서 주택과 학교, 상가 등이 밀집한 탓에 피해를 더욱 키웠을 것이다. 자재난 때문에 흙과 나무로 지은 집을 개조하지 못한 것도 폭발에 무방비였을 것이다. 가난이 참화의 한 원인이었던 셈이다. 일교차가 15~20도에 이르는 요즘, 아침저녁 살을 에는 추위를 경험해본 사람들은 동포들이 얼마나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을지도 가늠하기 어렵지 않다.
다행스러운 것은 사고 소식을 접한 우리 사회가 일제히 북한 돕기에 나서는 성숙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모처럼 ‘동포애’라는 한 가지 지향점을 향하면서 지혜를 모으는 모습은 그동안 우리에게 감춰져 있던 한민족의 저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씁쓸한 소식도 전해온다. 북한이 조선인민군 창건 72주년을 맞은 4월25일 각종 행사를 예정대로 치르면서 ‘경축야회’까지 여는가 하면 대한적십자사의 구호물자 육로 수송을 거부한 것은, 아무리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고 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북한 당국에 대해 “다친 어린이들의 신음소리를 듣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전북지역의 한 일간지는 당시의 이리역 폭발사고에 대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온 세계를 놀라게 한, 20세기 문명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어리석음과 무책임이 부른 대참사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21세기에 접어든 지금, 북녘땅에서 그런 ‘있을 수 없는’ 대참사가 일어났으니 우리가 할 일은 너무나 분명해 보인다. 한 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 북한 돕기에 이어, 미국의 침공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라크와 아프간에서부터 기아와 질병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도움을 기다리는 지구촌 곳곳에도 한번쯤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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