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편집장 배경록 peace@hani.co.kr
17대 총선이 중반에 접어들면서 선거운동도 무르익고 있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데다 약간의 조급증까지 있는 유권자들은 벌써부터 선거 결과와 의미에 대해 나름대로 ‘계가’와 ‘복기’를 하느라 바쁜 모습이다. 지금까지의 여론 흐름으로는, 열린우리당이 가장 많은 의석을 얻어 제1당이 될 것이라는 게 대세인 것 같다. 그러나 ‘박근혜 바람’과 ‘정동영의 노인폄하 발언’ ‘추미애의 3보1배’ ‘노회찬의 촌철살인 발언’ 등의 돌발변수들이 나타나면서 선거전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선거판을 즐기려는 유권자들에게는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각 정당과 후보들의 가슴은 타들어간다. 악재와 호재들이 물고 물리면서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 판세나 결과와는 별개로 이번 총선에서는 한 가지 의미 있는,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변화가 감지된다. 불법 정치자금 수사와 탄핵 정국이 곧바로 총선으로 이어지면서 지역주의 선거가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변화이다. 반면 ‘50년 정통 야당’의 뿌리를 계승하고 있다고 자부해온 새천년민주당이 간판을 내릴 위기를 맞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호 에서는 민주당 몰락 위기의 과정을 되돌아보고 그 원인을 짚어봤다. 그 과정에는 지역주의 청산이라는 시대적 요구가 담겨 있었다. 아무리 50년을 지켜온 야당이라고 해도 지역주의와 낡은 기득권에 연연해하면 5분 만에 국민의 마음이 떠날 수 있다는 냉엄함도 함께 확인할 수 있었다. 영남권에서 시작된 ‘박근혜 바람’이 제발 지역주의를 자극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지금의 민주당이 ‘50년 정통 야당’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자유당 정권 이후 야당의 명맥을 이어왔고, 특히 몇 차례 간판을 바꾸었지만 그동안 민주화 세력의 구심 역할을 해온 점 때문일 것이다. 모태인 민주당은 꼭 50년 전인 1954년 9월 해공 신익희 선생을 대표로 창당됐다. 자유당 시절에는 대통령 후보들의 잇따른 죽음과 부정선거 때문에, 5·16 군사쿠데타 이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철권통치와 야권분열 때문에 각각 집권에 실패한 아픔 경험을 갖고 있다. 고진감래라 했던가, 선거에 의한 정권 교체에 마침내 성공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배출했고 이어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이제 그 정통성마저 열린우리당에게 넘겨주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으니 만시지탄일 것이다.
한국 야당사를 얘기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빼놓을 수는 없다. 김 전 대통령은 신익희 선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이승만 독재정권 교체에 실패한 1956년 5월 제3대 대통령 선거 직후 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야당과 인연을 맺었다. 김 전 대통령은 (일본 <nhk> 취재반 구성·김용운 편역·도서출판 인동 펴냄)에 자신의 민주당 입당 소회를 밝힌 바 있다. “나는 (이승만 정권이 재집권할) 당시 우리 국민이 얼마나 불행에 처해 있는지 절감했다. 국민이 그토록 열망해 마지않던 선거에 의한 정권 교체라는 민주정치의 법칙이 이렇듯 허무하게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50년 가까이 민주당과 함께해온 김 전 대통령이 민주당의 몰락을 목도하면서 이를 ‘민주정치의 법칙’으로 받아들이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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