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부터 이게 웬 여름 날씨인가 싶더니 어린이날부터 사흘 동안 내린 긴 비를 맞고 개망초가 훌쩍 커버렸다. 무릎 위까지 올라온 개망초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벌써 봉오리가 형성되고 있다. 정원용 가위를 들고 개망초 꽃대를 툭툭 잘라가며 밭 위를 덮어주었다.
작년과 재작년에는 풀이 올라오는 족족 예초기를 돌려서 남들은 일 년에 세 번쯤 돌린다는 예초기를 열 번도 더 돌려온 아마추어 농사꾼이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꽃 피기 전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풀을 충분히 키웠다 베어주면 일손도 줄고 유기질이 많이 나와 땅 위를 덮어주는 좋은 덮개가 된다는 것을 이론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듬성듬성 자라나는 풀을 보면 손끝이 근지러워 도무지 참을 수 없었다. 올해는 마음속에 참을 ‘인’ 자를 몇 번이나 되새기며 기다렸다 베어내니 “와, 정말 이게 훨씬 더 빠르고 쉽네!” 탄성이 절로 나온다. 게다가 맨흙이 드러나지 않도록 바닥을 덮어줄 풀이 잔뜩 생기니 올해부터는 밭 위를 덮어줄 용도로 왕겨나 지푸라기를 따로 사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아 엄청난 부자가 된 기분이다.
그런데 5월 초에 벌써 개망초꽃이라니. 6월부터 피는 개망초의 꽃 피는 시기도 빨라졌지만 작물 대부분의 시기가 빨라졌다. 아까시나무도 우리 텃밭에서는 5월4일에 진한 향을 뿜으며 꽃을 피웠는데 피자마자 비 맞아 꽃을 떨궜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입하(5월5일)에 심었던 토마토, 고추 같은 가지과 작물을 작년에는 4월 말에 심었는데, 올해는 4월 중하순에 비가 하루 종일 온다는 소식에 참지 못하고 그만 심어버렸다. 당시 낮 기온이 20℃에 육박해 더 이상 밤에 서리가 오거나 영하로 떨어지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 같아서 심어봤는데, 정말로 그런 일(기온이 크게 떨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모종이 멀쩡히 살아 있어서 다행이면서도 여름이 더 빨라지고 길어진 기후위기가 체감돼 당황스럽게 느껴진다.
감상은 여기까지. 이제는 손을 빠르게 움직여야 할 때이기도 하니까. 줄뿌림한 상추를 솎아내고, 와일드 루콜라가 꽃대를 올리지 않도록 부지런히 따줘야 한다. 이제부터는 매일 아침 산책 대신 밭으로 달려가 수확하지 않으면 속칭 ‘지옥문’이 열린다. 돌나물, 오레가노, 민트는 세력을 키우니 또 툭툭 잘라내 샐러드로 먹고 건조기에 말려 저장을 시작한다. 먹지 않으면 솎지 않아 밭의 균형을 잃게 되니, 사람이 바쁘게 먹는 것이 곧 작물을 돌보는 일이기도 하다.
한 달 넘게 먹은 샐러드가 지겨워진 요즘 내가 자주 해 먹는 음식은 ‘포케’(Poke) 스타일. 하와이 전통음식이라는 포케는 원래 갓 잡은 생선을 깍둑깍둑 썰어 소스를 뿌리고 채소와 버무려낸 음식인데 접시에 잎채소를 듬뿍 깔고 해산물 대신 ‘냉털’(냉장고 털이)한 반찬이나 텃밭 아스파라거스를 구워 올리고 밥 한 덩이를 올려서 소스를 뿌린다.(밥할 시간이 부족하면 냉동 주먹밥도 좋다!) 같은 식재료라도 소스와 플레이팅을 조금 바꾸면 다시 새로운 음식이 되어 질리지 않는 한 끼로 위장을 든든히 채워준다. 내일은 밭의 이곳저곳을 점령해나가고 있는 무언가를 수확해볼까. 오랜만에 떠오르는 사람에게 연락해 한가득 안겨주면 좋겠다.
글·사진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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