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경기도 양평군의 ‘종합재미농장’은 농가에서 여는 사진전을 기획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한 것처럼 한 농가를 키우는 데도 동료들이 필요하다는 주제를 담아 관계도를 그렸다. 사람들은 때로 먹거리를 두고 작물을 기르는 사람과 먹는 사람을 이분적으로 바라보지만, 작물을 기르는 사람 주변에는 여러 관계가 있다. 그 농장의 작물을 꼭 사먹지 않더라도 농사일을 함께 하러 오는 사람이 있고, 날씨나 작황 같은 중요한 정보를 전해주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들 곁에는 항상 그들을 응원하는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
10년 전부터 살던 빌라 옥상과 도시 텃밭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농사짓는 내게 어떤 사람은 여러 지역을 넘나들며 원격으로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처럼 ‘노마드 농부’ 같다며 낭만적으로 불러줬지만 사실은 꽤 외로웠다. 일에도 머리를 맞대며 함께할 동료가 없었고, 농사에도 동료가 없었다. 매년 어디에서 농사짓느냐는 도시 텃밭의 당첨 여부에 달렸지 내 의지는 아니었다. 땅을 옮겨다니는 일은 새 땅에 다시 적응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나를 ‘동지’라고 불러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충남 논산에서 농사지으며 농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꽃비원’은 생태적 삶을 고민하며 다품종 소량생산을 지향하는 전국의 농민을 모아, 2018년 12월 ‘동지에 만나는 동지들 모임’(동지모임)으로 엮었다.
멤버로 모은 사람들은 대부분 큰 기반 없이 농사를 시작한 젊은 농민들. 당시 고작 10평 농사를 짓는 내 눈에는 대부분 그럴싸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었다. 농민들의 모임에 나 같은 사람이 끼어도 좋을까 고민했지만 내 역할이 뭐라도 있겠지 생각하며 함께했고 당시 주제는 꽤 무거웠다. ‘우리가 내년에도 농부로 살 수 있을까’라는 큰 틀에서 각자가 처한 고민을 함께 나눴다.
처음 한두 해는 기록자로 참여해 농사를 시작한 사람들의 고충을 열심히 들으며 옮겨 적었다. 농촌의 가장 큰 고민거리라는 집 구하기부터 친환경 농가에 대한 이웃들의 편견 혹은 몰래 농약을 대신 뿌려주는 일 같은 원치 않는 친절에 대처하는 법, 지금은 노린재가 훨씬 극성인 것 같지만 당시에는 여름마다 큰 골칫거리였던 선녀벌레를 방제하는 법, 뱀이나 두더지를 어떻게 쫓을까를 두고 언성이 높아지며 각종 ‘꿀팁’이 오갈 땐 눈이 반짝였다. ‘이것이 찐으로 농사짓는 사람들의 세계이구나!’ 바로 몇 년 뒤 내 고민거리로 다가올지도 모르고 그때는 참 낭만적으로 들었다.
처음 7팀으로 시작했던 동지모임은 비슷한 결을 가진 농가들이 드나들다 어느새 꽃비원과 종합재미농장, 나와 남편까지 3팀이 되어 7년째 모임을 계속하고 있다. 7년 동안 ‘현실 농민’들의 내밀한 고민과 각자의 해법을 들으며 나도 밭 주인과 협상하는 스킬을 배워 같은 도시 농장 안에서도 옮겨다니던 10평 텃밭도 고정된 자리에서 30평으로 늘렸다.
훗날 내가 어떤 농민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농사에는 땅과 집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뭐가 가장 중요한지 잘 알 것 같다. 실제로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서로를 북돋워주는 동지 같은 사람들이 아닐까. 동지모임에 함께하며 내게는 롤모델이자 가까운 선배 농가가 둘이나 생겼다. 이들이 나를 키워주고 꿈의 경로를 다듬어준다.
글·사진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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