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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비늘 있는 물고기가 제일 싫었다”

<한반도 바닷물고기 세밀화 대도감> 528종 1600여 점 세밀화 그린 조광현 화가 “남은 꿈은 한국의 해양예술 개척”

제1380호
등록 : 2021-09-10 21:20 수정 : 2021-09-14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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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12일 서울 구로구 온수동 작업실에서 만난 조광현 화가.

소설 <노인과 바다> 속 노인의 작업실이 이런 풍경일까. 검게 메마른 돛새치 꼬리, 청상아리와 귀상어의 턱뼈와 이빨 표본이 벽에 걸려 있다. 입구 테이블은 목범선 모형으로 꽉 찼다. 찰스 다윈이 타고 세계를 유람한 비글호부터 캐리비언 해적선 모형까지 손톱만 한 나무를 이어 붙여 제작했다. 뒤편엔 빈 수족관이 처박혀 있다. 거대한 캔버스에 유화 물감으로 그리다 만 그림이 없었다면 화가의 작업실이란 걸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가로 120㎝, 세로 194㎝ 캔버스에 푸른 바닷속 풍경을 그렸다. 겨울 바다 키 큰 모자반 숲에 볼락과 능성어가 몸을 숨기고 배회한다.

2021년 8월12일 서울 구로구 온수동 작업실에서 만난 조광현(62) 화가는 “울릉도 바닷속 풍경”이라며 “아름다운 바다라고 하면 늘 해외의 열대 바다만 떠올리는데 국내 온대 바다도 특유의 멋이 있다”고 말했다.

비늘을 세고 비늘의 오와 열을 맞추며
조 화가는 2000년대 초반부터 바다 생태를 작품 주제로 삼았다. 2006년부턴 바닷물고기 세밀화 작업에 매달렸다. 최근 15년 만에 과업을 이뤘다. 바닷물고기 528종을 세밀화 1600여 점으로 집대성한 <한반도 바닷물고기 세밀화 대도감>(이하 <대도감>)이 2021년 7월30일 나왔다. 1975년부터 평생 어류 생태를 연구한 명정구 박사(전 한국수중과학회 회장)가 글을 썼다. 최근 연구 결과를 반영해 물고기 이름, 생김새, 생태, 성장, 분포, 쓰임 등을 쉽게 풀었다. 국내 바닷물고기 도감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다. 조 화가는 물고기 비늘, 지느러미 가시, 옆줄 무늬를 한땀 한땀 그렸다. 그 작업은 “물고기에 관한 모든 정보를 그림으로 기록하는 일”이었다. 그는 작업 과정을 설명하면서 “하여간 비늘 있는 물고기가 제일 싫었다”고 털어놨다. 비늘 수를 일일이 세고 비늘의 ‘오와 열’을 맞추느라 애먹었단 얘기다.

산갈치: 깊은 바닷속에서 살기 때문에 사는 모습은 짐작만 할 뿐이다. 몸길이는 5~8m쯤 된다. 여러 사람이 모여야 겨우 들 수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대도감>을 한 손으로 집어 올리기 버거울 것이다. 두꺼운 양장본을 이른바 ‘벽돌 책’이라고들 하는데, <대도감>은 ‘벽돌 세 장짜리’라고 보면 된다. 가로 24.2㎝, 세로 30㎝, 무게 5.7㎏, 쪽수 820페이지다. 제1부 ‘바닷물고기 개론’에서 물고기 연구 역사, 진화 과정, 몸 구조 등을 설명한다. 제2부 ‘우리 바다 물고기’에선 무악어류(턱 없는 물고기), 연골어류(뼈가 물렁물렁한 물고기), 경골어류(뼈가 단단한 물고기)로 크게 나눠 물고기 528종을 종마다 소개한다.

“바다는 조 선생이 맡으쇼!” 동식물 세밀화 도감을 개척해온 보리출판사의 윤구병 대표가 2006년 처음 조 화가에게 제안했다. 애초 계획은 <바닷물고기 도감>(이하 <큰도감>, 2013년 출간)까지였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닷물고기 158종을 추려 소개했다. <큰도감> 출간 기념 모임에서 조 화가가 먼저 운을 뗐다. “바닷물고기가 사실은 어마어마하게 많고 옆 나라 일본은 ‘도감의 왕국’답게 더 방대한 도감을 만드는데 우리도 500종 한번 해봅시다.” 윤구병 대표가 흔쾌히 동의했다. 출판사 편집부는 고민에 휩싸였다고 한다. 김종현(49) <대도감> 편집자는 “그때 회사는 난리가 났다. 매우 큰 자금과 시간이 들어가는 작업이라 과연 우리가 할 수 있을까 정말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성경책을 제본하는 곳에 제본을 맡기고
<큰도감>보다 3배 이상 많은 물고기를 담아야 했다. 산갈치처럼 기존 도감에서 잘 다루지 않은 희귀한 바닷물고기들도 소개했다. 책 두께를 줄이려고 인쇄 가능한 최대 판형으로 결정했다. 문제는 제본이었다. 기존 업체들이 가제본을 가져오면 열이면 열 책장이 쉽게 뜯어졌다. 워낙 크고 무겁고 두꺼운 탓이었다. 결국 출간 한두 달 전에 가까스로 제본 업체를 구했다. 두꺼운 성경책을 전문적으로 제본하는 곳이었다. 가제본해 온 책이 튼튼했다.

달고기: 달고기목 달고기과. 몸통에 보름달처럼 동그란 점무늬가 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그 무늬가 해를 닮았다고 ‘태양물고기’라고 한다. 입은 위쪽으로 열리고 아래턱이 위턱보다 조금 길다. 등지느러미 앞쪽 가시가 꼬리지느러미에 닿을 만큼 실처럼 길어져서 물속에서 하늘거린다.

“카메라로는 절대 이렇게 못 찍죠.” 조 화가는 “도감엔 사진보다 세밀화가 적합하다”고 말한다. “수중 사진은 빛이 부족해 물고기 색이 잘 안 나오고 지느러미도 접혀 있어서 부위별 색과 모양을 제대로 알아보기 어렵다.” 세밀화는 물고기 생김새의 전모를 재구성해 보여줄 수 있다. 실제 그림 그리는 시간보다 정보 수집하는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린다고 한다. 직접 찍은 사진, 해외 다이버들이 찍은 사진, 연구논문과 인터넷 자료를 샅샅이 뒤져 그러모은다. 그는 <대도감> 작업을 하면서 군산대 해양생물공학 전공 대학원에 입학했다. “제대로 공부해 그릴 생각”이었다. 2017년 한국 나이 59살에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 일러스트는 엄밀해야 한다. 사진 이미지를 확대해서 비늘 숫자도 일일이 셌다. 하여간 비늘 있는 물고기들이 제일 싫었다.” 비늘 세는 게 다가 아니었다. “비늘을 그리려면 비늘 가로선과 세로선 개수와 수평을 다 맞춰야 한다. 개중엔 가로선 중간에 새로운 선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물고기도 있다. 또 비늘에 찍힌 무늬가 비늘 뿌리 쪽에 있는지 가장자리에 있는지, 그 무늬가 막대 형태인지, 번지는 형태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아직 끝이 아니다. “눈의 위치가 입꼬리 앞인지 뒤인지, 등지느러미 위치가 배지느러미 앞인지 뒤인지, 윗입술이 아랫입술보다 큰지, 더 앞으로 튀어나왔는지, 눈과 가슴지느러미 사이 간격이 주둥이보다 큰지 작은지도 따져봐야 한다.” “달고기는 첫 번째 등지느러미 가시들 길이를 비교해 비율에 맞게 그려야 하고 가시를 잇는 막이 어디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 봐야 한다.”

가장 종류가 많은 망둑어, 무늬 복잡하고 차이가 미묘
“눈다랑어의 눈 그림을 지적받은 건 충격”이었다고 한다. “‘눈이 다 동그랗지 뭐’라고 생각해서 동그랗게 그렸는데 명정구 박사가 그림을 보곤 눈다랑어는 눈이 미세하게 찌그러져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도 약간 찌그러진 건 봤는데 그게 사진을 잘못 찍었거나 물 밖에 나와 고통스러워서 찡그려 그러는 줄 알았다.” 제일 애먹인 물고기는 망둑어 종류였다고 한다. “지구상에 가장 종류가 많은 물고기가 망둑어인데 무늬는 모두 복잡하면서 서로 차이는 미묘하다.”

짱뚱어: 몸은 짙은 잿빛이고 파란 점이 흩어져 나 있다. 등지느러미와 꼬리지느러미에도 파란 점이 나 있다.

처음부터 바다에 꽂힌 건 아니었다.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1980년대 초중반 ‘민중예술’ 동인전에 참여했다. 1995년 뒤늦게 첫 개인전을 열었다. 제목은 ‘불안한 세계’였다. “자연과 세계 속 인간이라는 존재를 고민한 작품들”이었다. 1999년 개인전 ‘갯벌-영원의 주름’은 그가 바다 생태를 파고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전시가 끝나고 해양수산부는 2003~2004년 그에게 ‘해양환경 교육 교재 시리즈’ 삽화를 의뢰했다. 사계절출판사는 책 <갯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2004) 그림을 그에게 맡겼다. 조 화가는 “학자들과 조사하러 다니면서 예술가가 아니라 과학도가 된 기분이었다. 이론을 공부하면서 취재하는 과정이 너무 재밌었다”고 회상했다. 그 무렵부터 전시회는 안 하고 현장만 돌아다녔다. 자연이라면 산, 바다, 사막을 가리지 않았다. 2000~2008년 몽골 고비사막을 세 차례 탐사했다. 2003년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따고 독도, 팔라우, 인도네시아 발리, 서파푸아뉴기니 등에 수중 탐사를 갔다. 그건 “날것 그대로 삶의 느낌을 회복하고 지구적 사고의 지평을 열어준 시간”이었다.

반투명, 영롱한 광택… 보고 나면 더 어렵다

쏠배감펭: 덩치 큰 물고기가 다가오면 새 날개처럼 생긴 가슴지느러미를 활짝 편다. 덤비는 물고기가 없으니 물속을 느긋느긋 나붓나붓 헤엄쳐 다닌다.

“실물을 보고 나면 그리기가 더 어렵다.” 조 화가는 물속에서 물고기를 보면 그리는 게 더 어렵다고 했다. “물속 물고기는 반투명하고 영롱한 광택을 띠어서 무슨 색인지 판단이 안 된다. 물감을 쓰려면 색을 확정해야 하는데, 색을 정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실물을 보면 관점과 느낌이 살아난다. 빨간 물고기도 푸르스름하거나 어두운 부분을 포착해 표현하면 그림이 훨씬 생동감 있다.”

조 화가는 물속에서도 그림을 그린다. 바닷속으로 이젤과 캔버스, 붓과 물감을 가지고 들어간다. 2012년 제주 서귀포 앞바다 문섬 일대에서 처음 실험했다. “야외 스케치를 들이나 산에선 하는데 물속에선 왜 안 될까 생각했다. 공기통 메고 내려가 자리잡고 이젤과 캔버스 설치하고 올라와 공기통 갈고 다시 내려가 20분 정도 그림을 그리고 올라온다.” 햇빛이 들어와 밝은, 깊이 10m 이내 평평하고 물살 없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 서남해는 물이 탁해 보통 동해로 간다. 그림을 그리면 호기심 많은 물고기가 주변으로 몰려든다. “제주도 서귀포 문섬 일대 바닷속에서 그림을 그리는데 쏠배감펭이 점점 다가왔다. 독 가시가 위험한 물고기다. 결국 그 애가 내 자리에서 그림 구경하고 난 옆으로 한동안 쫓겨났다.” “울릉도에선 돌돔을 그리는데 그 앞으로 돌돔이랑 용치놀래기가 떼로 모여들어 용궁에 온 기분이었다. 이생인가 저 생인가 싶은 황홀한 경험이다.” “일상에선 꿈도 못 꾸는 저세상 판타지가 바닷속에 있다.”

고래상어: 세상에서 몸집이 가장 큰 물고기다. 덩치는 커도 성질이 아주 순하다. 온몸에 하얀 점이 흐드러졌다. 따뜻한 물을 따라 넓은 바다를 돌아다닌다.

조 화가는 지난 15년간의 물고기 세밀화 작업에 마침표를 찍을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그린 세밀화를 전시한다. ‘조광현의 FISH-한국의 물고기 원화전’이다. 2021년 9월22~28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물고기 세밀화 70점을 전시한다. 그 뒤엔 다시 ‘본업’인 유화 작업으로 돌아간다. “바다에 정면으로 뛰어들어 자유롭고 실천적인 페인팅 작업을 할 계획”이다. 그의 남은 꿈은 한국의 머린아트(해양예술)를 개척하는 것. 그는 “유럽은 해양예술 분야가 방대하고 세분됐는데 국내는 바다생태에 대한 관심 자체가 너무 적다. 나부터 머린아트의 길을 열어볼 생각”이라고 했다. 늘 바다를 꿈꿔온 베테랑 화가는 이제 더 넓은 바다로 떠난다.

글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세밀화 이미지 보리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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