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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대응, 시작은 데이터부터

등록 2022-10-22 07:21 수정 2022-10-23 01:55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미국 사회를 떠돌던 한 가지 ‘썰’이 있었다. 미국인이 중국 음식을 예전보다 덜 먹는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발현됐기 때문에 중국 음식을 먹으면 코로나19에 걸린다’고 믿거나 그저 ‘중국이 싫어져서’가 그 이유로 추측됐다. 그 썰이 맞는다면 특정 국가에 대한 ‘혐오’가 불매라는 ‘행동’으로 발현된 셈이다.

김은지 미국 컬럼비아대학 정치학과 교수와 신디 캄 밴더빌트대학 교수가 공동연구한 ‘일상생활 속의 타인화: 코비드-19 팬데믹의 반중국 편향’ 연구는 이 썰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됐다. 팬데믹 전후 미국 식당과 중국 식당의 별점은 차이가 날까. 미국의 대표적인 식당 평가 애플리케이션 ‘옐프’를 살펴봤다. 미국에서 아시아인 인구 비중이 높은 8개 도시를 선정한 뒤 2020년 미국 식당과 중국 식당에 대한 평점(1~5점의 별점)을 긁어모아 분석했다. 팬데믹을 기점으로 중국 식당이 미국 식당에 견줘 별점이 현저히 낮아진 것이 관찰됐다. 한국이나 베트남 식당의 별점은 팬데믹 전후 큰 변화가 없었다.

일상생활까지 파고든 혐오를 데이터로 증명해낸 이 연구는 여러 시사점을 남긴다. 혐오는 중국인을 넘어 모든 아시아인에게 향할 수 있다. “데이터가 있어야 정부 정책을 정확하게 집행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다른 식당은 피해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시아 식당 전부에 보조금을 줄 필요가 없죠. 지원금을 배분한다면 중국 음식을 파는 식당에 더 배분할 수 있는 거예요.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해야 정책을 정확하게 세우고 실행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김은지 교수)

<한겨레21>은 제1434호 표지이야기에서 혐오의 시작(외로움과 고립)과 끝(증오범죄)을 영국과 미국 사례를 통해 살폈다. 그간 한국 사회는 ‘혐오의 민낯’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다. ‘혐오’가 어디에서 시작됐고 얼마큼 비대하며 어떤 세력에 의해 활용되는지 명확하게 측정한 바 없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증오범죄를 데이터로 집계한다. 형사사건, 그중 가장 극단적인 일부만 집계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한국은 그마저도 없다. 한국의 수사기관이나 사법부는 증오범죄를 분류해 통계로 만들지 않는다. 2022년 4월 서울 용산구에서 성소수자를 유인해 이유 없이 살해하려 한 사건도 수사 단계부터 법원에 이르기까지 여러 살인미수 사건 중 한 건으로 처리됐을 뿐이다.

김 교수는 “혐오의 현재를 데이터로 진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손에 잡히는 숫자가 없다면 혐오에 대응하는 어떤 정책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혐오이고, 이런 행위는 증오범죄라고 기준을 정해 정의를 내려야 소모적인 논쟁을 넘어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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