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보면 눈물이 흐르고, 땅을 보면 한숨만 쏟아지는 나날입니다.
북한은 9월3일 낮 6번째 핵실험을 단행했습니다. 북한 관영 는 이날 오후 3시30분 ‘중대 보도’를 통해 “대륙간탄도로케트(ICBM)에 장착용 수소탄 시험에 완전 성공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 무기화하는 것이 (우리 정부가 허용할 수 없는) 레드라인”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로부터 채 한 달이 못 돼 김정은은 문 대통령이 선언한 ‘레드라인’을 비웃듯 넘어버렸습니다. 북핵 문제 전문가인 김동엽 경남대 교수는 이번호 기고에서 “6차 핵실험에 사용된 핵폭발 장치가 북한이 당일 아침 언론매체를 통해 공개한 장구형 물체와 동일한 것이라면 북한이 미국 본토까지 날아가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탑재할 수 있는 50kt 위력을 지닌 폭발체를 갖게 되었다고 해석해야 한다. 북의 핵 보유는 기술적으로 정점을 찍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단언했습니다.
9월7일 새벽 단행한 문재인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현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은 대부분 사드 반대론자입니다. 저는 그저 문재인 정부가 ‘완벽한 패닉’에 빠졌다고 생각합니다. 7월 이후 북의 핵과 미사일 연속 실험은 한반도뿐 아니라 전세계를 패닉으로 몰고 갈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우울한 나날이 계속되다보니 아침 출근 시간을 견디기 위해 빼드는 책이 달라졌습니다. 이전엔 가볍게 읽고 넘길 만한 소설을 선호했지만, 요즘엔 한명기 명지대 교수의 , 재일조선인 사학자 박종근 선생의 등을 읽습니다. 책 속에는 달라진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해 허둥대는 ‘당대 엘리트’들이 등장합니다.
한반도 사드 배치의 이면엔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지적했듯 사드는 한국을 지키는 무기가 아닙니다. 사드의 방어 범위엔 서울 등 수도권이 벗어나 있습니다. 그럼 뭘 지키기 위한 것일까요. 사드 방어 범위 200km 안에 위치한 평택 미군기지입니다. 한강 이북에서 이동해온 미군 부대와 그 가족이 생활하는 곳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들은 한국을 방어하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상징하는 ‘볼모’입니다.
최근 읽은 책 가운데 가장 모골이 송연했던 것은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학 석좌교수 등이 일본 언론인 스노하라 쓰요시와 진행한 대담집 (2010)입니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방부 차관보를 지낸 나이 교수는 이 책에서 미국의 확장억제(핵우산)가 작용하기 위한 전제 조건에 대해 “핵 유사 사태가 발생했을 때 미국이 일본을 지킨다는 것을 담보해주는 것은 핵무기 그 자체가 아니라 일본에 주둔해 있는 미군의 존재다. 진짜 담보하는 것은 북한의 핵 공격에 의해 일본 국내에서 생명을 잃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르는 미국인이 있다는 사실”이라고 합니다.
북한의 핵 위협을 현실로 인식한 미국은 사드를 배치해 평택의 군인들과 가족을 방어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럼 우리가 핵공격을 당해도 그로 인해 미국인이 생명을 잃을 가능성은 낮아집니다. 그래서 사드 배치는 한국에 대한 미국 방어 공약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그만 패닉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이 상황을 돌파할 냉철한 이성과 대담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길윤형 편집장 charisma@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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