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별사탕

등록 2016-08-16 16:25 수정 2020-05-03 04:28

그 시절 골목은 흙길이었다. 변소에서 똥 퍼내는 아저씨, 고물 주면 엿 주는 할아버지, 집집의 대문을 두드려 화장품 파는 아줌마가 골목을 어슬렁거렸다. 그리고 그 골목엔 소꿉친구가 있었다.

긴 생머리의 그녀는 골목에서 비석치기의 복잡한 단계를 가르쳐주고, 제 집에 데려가 종이인형을 오리게 해주었다. 어느 여름날, 그녀의 할머니는 빨간 목욕통을 마당에 부려놓고 우리를 씻겼다. 여자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발가벗었고, 나는 아무래도 부끄러워 다리를 오므렸다. 진창길의 골목이 아름다운 것은 그 아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유치원보다 더 좋은 주일학교라는 게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주일학교에선 성경 말씀을 들려주었다. 귀한 말씀 가운데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고, 그 말씀이 끝나면 ‘뽀빠이’ 과자를 나눠주었던 것만 생생하다. 그런데 재수가 없으면 뽀빠이를 못 받았다. 영특한 녀석들은 선생님을 용케 속이고 두어 개씩 받아갔다. 반나절을 견뎠으나, 뽀빠이가 모자라 빈손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은 고만 울어버렸다. 주일학교가 소중한 것은 뽀빠이 때문이었다.

더 결정적 문제가 있었다. 밀가루 범벅을 튀긴 과자 봉지에는 서너 개의 ‘별사탕’이 들어 있었다. 누구나 고민했다. 별사탕을 먼저 먹을 것인가, 나중에 먹을 것인가. 고심조차 누군가에겐 사치였다. 별사탕이 없는 불량품이 간혹 있었다. 별사탕이 빠진 뽀빠이를 좌절 없이 감당하긴 어려웠다. 뽀빠이가 특별한 건 별사탕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번호부터 에 별사탕 서너 개를 넣어둔다. 고귀한 글을 읽는 틈틈이 그냥 재미나게 즐겨주시길 기대한다. 국내 유일의 어린이 교양지를 표방하는 월간 와 힘을 합쳐 격주에 한 번씩 ‘고래가 그랬어’ 섹션을 신설한다. 초등학생, 중·고등학생, 그리고 그들을 보살피는 어른들이 함께 읽기에 좋을 것이다.

만화 ‘모두가 래퍼’도 격주로 싣는다. 이 세상을 함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깔끔하고 감각 있는 그림으로 전한다. 레드 섹션의 여러 연재물을 지난 한 달여간 차근차근 정돈하고, 이제 새 꼭지를 여럿 준비했다. 특히 마지막에 싣는 ‘노 땡큐!’ 칼럼을 현장에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기자들이 직접 쓰기로 했다. “‘만리재에서’를 능가하는, 칼럼의 진수를 보여주겠다”며 기자들이 벼르고 있다. 이런 별사탕들이 있어 더욱 재미나고 곡진한 매체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뽀빠이 속 별사탕을 솎아 먹던 시절, 나는 만화 을 보며 북한의 김일성이 빨간 망토를 뒤집어쓴 돼지라는 것을 알게 됐다. 국민학교에 입학해 받아 읽은 교과서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왜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켜주셔야 하는지도 알게 됐다. 나중에 그것이 순전한 사기였음을, 일부러 별사탕을 빼버린 뽀빠이 같은 것이었음을 알게 됐을 때, 나는 어린 시절을 고만 잃어버렸다.

토론을 허락하지 않고, 적은 대로 암송시켜, 하나의 생각으로 아이들을 키우겠다는 그악함을 표지이야기에서 다뤘다. 별사탕 서너 개조차 허락하지 못하는 정권에 대한 이야기다. 어리고 순한 아이들에게 소꿉장난의 흙길을 돌려주진 못할지언정, 그들의 교과서까지 분탕질하려는 시도를 막으려면 어찌 해야 하는지 시인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담쟁이의 지혜를 들려주었다. 중력을 거슬러 한잎 한잎 기어오르는 담쟁이. 그 아우성의 지혜.

안수찬 편집장 ahn@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인터넷신청▶ <font color="#C21A1A">http://bit.ly/1HZ0DmD</font>
카톡 선물하기▶ <font color="#C21A1A">http://bit.ly/1UELpok</font>
<font color="#006699">* 캠페인 기간 중 정기구독 신청하신 분들을 위해 한겨레21 기자들의 1:1 자소서 첨삭 외 다양한 혜택이 준비되어 있습니다</font>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