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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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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

등록 2016-05-17 06:27 수정 2020-05-02 19:28

부처님 오신 날의 전야에 이 글을 쓴다. 성스럽지 않은 인생이라 마음에 품은 종교는 없다. 다만 호기심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린 바 있다. 열일곱 무렵 드나든 곳은 절이었다.

1989년 1월, 전남 구례군 지리산 화엄사에서 일주일간 수행했다. 예불, 백팔배, 공양, 좌선, 운력, 다시 백팔배로 하루를 보냈다. 묵언수행도 자처했다. 말하지 않으려면 듣지 않아야 했다. 법고, 목어, 운판, 범종에만 귀를 열었다. 산 것과 죽은 것의 소리가 심장 아래에서 울렸다.

마지막 날 저녁, 대웅전 계단을 올랐다. 석양을 보았다. 하늘이 푸르면 석양이 붉다. 겨울바람이 푸르게, 그러다 붉게 대웅전 앞마당을 쓸었다. 삼천배를 시작했다. 비로자나부처가 내려다보았다. 엄지손가락을 거머쥔 보리인(菩提印)을 하고는 깨달음과 미혹함이 하나라고 말해주었다. 절 한 번에 염주 한 알. 108개의 염주알이 한 바퀴 돌면 앞으로 나아가 향 하나 꽂으며 3천의 숫자를 헤아렸다. 12시간 걸렸다. 밤이 왔다가 문틈으로 빠져나갔다. 무릎이 펴지지 않아 걷지 못하고 기었다. 대웅전 앞마당에 밤새 눈이 내렸다. 푸른 아침, 붉은 해가 번지는 하얀 눈 위를 기어 나아갔다.

주지스님이 계율과 법명을 주셨다. “새 세상을 만드는 전륜성왕이 이 땅에 오시면 그걸 사람들에게 알리는 꽃, ‘우담바라’가 핀다. 우담이 되거라.” 일주문을 나설 때까지 묵언을 깰 수 없었다. ‘우담, 우담’ 속으로만 되뇌었다. 지금껏 기자 노릇 하는 게 법명 때문이 아닌가 한다. 좋은 세상이 온다고 알리는 일. 그런 꽃의 일. 그 꽃이 되기를 준비하는 일.

법명을 받은 곳이 화엄사인 것도 새삼스럽다. 화엄 사상은 모든 중생을 그 수준에 따라 알맞은 방편으로 깨우치는 것을 중시한다. 가부좌만 틀고 앉았거나, 경전 들여다보며 머리 싸매는 일을 두루 경계한다. 화엄은 대중에게 진리를 전하는 실천의 사상이다.

의 백미는 선재동자의 구도 여행을 담은 ‘입법계품’이다. 누구든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게 적었다. 동자가 만난 이 가운데는 장삼이사와 어린아이, 그리고 몸을 파는 이도 있었다. 깨달음은 고귀한 이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며, 어떤 경지를 일컫는 게 아니라 그것에 이르는 정진에 대한 말이며, 낮고 약한 이로부터 듣고 배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은 쉽고 친근한 언어로 설법한다. 그런 을 불교의 ‘(좋은 정보만 담은) 대중언론’이라고 평한다면, 부처님이 화를 내실까.

선재동자에게 가르침을 주는 문답 가운데 밥에 대한 대목도 있다. 걸식하여 밥을 얻게 되면, 한 몫은 같은 길을 걷는 동무에게 주고, 한 몫은 가난한 이에게 베풀고, 한 몫은 감옥에 갇힌 이에게 주고, 마지막 한 몫을 제 입에 넣되, 이 음식으로 인해 정진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라고 이른다.

좋은 세상으로 안내하는 우담이 되고 싶다. 친절한 언어로 진리를 전하는 이 되고 싶다. 구도의 길에 얻은 밥 한 덩이를 동지들과 나누고, 가난한 이들에게 건네고, 갇히거나 쫓기며 핍박받는 이들과 나누며 삼천배의 신심으로 용맹정진하겠다. 정기독자를 모신다. ahn@hani.co.kr로 성함과 개인 연락처를 알려주시면, 우담이 직접 정기구독을 대행해드린다. 발우에 담긴 밥 나눠 먹으며 의 마음으로 우담바라를 피우겠다.

안수찬 편집장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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