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교감

등록 2015-11-03 17:26 수정 2020-05-03 04:28

1997년 11월3일, 한겨레신문사에 처음 출근하던 날, 장차 맞닥뜨리게 될 가장 큰 난관이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 있을 것임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게 좋지 않았다. 좀 가만히 있고 싶은데, 자꾸 몸과 마음을 일으켜 표정과 말을 관리해야 했다. 귀를 염산에 담가버리고 싶은 이야기를 흥미로운 척 듣는 일, 기억에서 통째 지워버리고 싶은 사람을 자꾸 마주하게 되는 일이 온통 징그러웠다.

그런 날이면, 조용하고 추레한 백반집에 혼자 가서 제육덮밥을 주문했다. 책 하나, 국그릇 옆에 펼쳐놓고, 제육을 먹으며 글자를 읽었다. 비로소 행복했다. 돼지고기와 책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사람 따위 필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단어는 ‘교감’이었다. 감정을 주고받는다니. 그것은 얼마나 막연하여 불가능하며 끝내 상처만 남기는 꿈인가.

대신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슬픈 사랑, 특히 가난한 사람의 사랑에 대해 쓰고 싶었다. 그걸 쓸 때까지 견뎌보자고 마음 다독이며 제육을 씹었다. 여태 제대로 쓰지 못했다. 아직 기자 노릇을 하고 있다.

하여튼 그것은 일방향의 욕망이었다. 글을 세상에 던져놓고 싶었을 뿐, 누군가와 교감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다. 그 끝에 외로움이 남았다. 어느 기자 선배는 술만 취하면 “나이가 든다는 건 가슴에 슬픔이 차오르는 일”이라고 주정을 부렸다. 그 문장이 마음에 들어 기억해두었다. 특히 듣고 싶은 이야기는 없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일수록, 그래서 결국 누구에게도 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없게 된 사람일수록 미움과 슬픔이 나이와 함께 차오를 것이다.

기성 언론이 그 모양으로 늙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으나 귀기울일 생각은 없는 언론. 혼자 제육덮밥 먹는 중년의 언론. 그런 경우를 위해 선현이 제시한 해법이 없지는 않다. 나이가 들면, 미움과 슬픔이 가슴에 차오르면, 좀 닥치고 그냥 이야기 들으라 하셨다.

지난 한 달여 동안 우리는 기사·매체·언론에 대해 참 많은 토론을 나눴다. 몇 가지 갈피를 잡고 지금까지의 방식을 바꿔보기로 했다. (뉴스를) 전달하겠다는 생각을 접고 (독자와) 교감하기로 했다.

우선 페이스북에 정기독자 커뮤니티를 새로 만든다. 이 공간에서 독자들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듣고 그에 기초해 기사를 준비할 것이다. 조만간 그 공간을 카카오스토리 등 다른 디지털 공간으로 확대하겠다.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정기독자만 접근할 수 있는 웹페이지도 만들 것이다. 뉴스메일 서비스도 시작하겠다. 디지털 접근이 힘든 정기독자에겐 직접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청하겠다.

일련의 도모는 ‘독자-기자 공동체’ 구축으로 요약할 수 있다. 기사 선택의 기준을 정기독자에게 맞추고, 그 기준을 발견하기 위해 독자와 교감하는 공간과 기회를 많이 만들고, 이를 반영해 기자가 쓰고 싶은 기사를 나열하는 대신 독자가 원하는 기사에 집중하겠다.

그 일을 제대로 벌이려고 지면을 조금 줄인다. 96쪽이었던 지면이 이번호부터 88쪽으로 준다. 그래도 시사주간지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이다. 전체 분량이 조금 줄었어도 지성·교양 콘텐츠는 늘어날 것이다. 뉴스를 읽으면서 똑똑해지고 있다는 충만감을 드리기 위해 온갖 애를 쏟아부을 것이다.

누군가 미울 때는 혼자 먹는 제육덮밥으로 족하지만, 세상 전체가 슬플 때는 그것으로 부족하다. 누군가 만나 슬픔과 고통을 나눠야 한다. 그 태도로 언론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입사 18년 만에 알아차렸다. 개인 전자우편 주소를 보내주시면 뉴스레터를 발송하고, 각종 독자 커뮤니티 가입을 안내하면서, 오랫동안 따뜻하게 교감하겠다. 문의는 02-710-0552 또는 funnybone@hani.co.kr.

안수찬 편집장 ahn@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