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식 기자는 말수가 적다. 붉고 뜨거운 마음이 입 밖에 나오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도 편집장은 그에게 살갑게 말을 건다. “분신임에 틀림없다”고 기자들은 놀린다. 탁월한 문장을 날개처럼 달고 진실을 후벼파는 기사를 후딱후딱 써내는 전 기자가 10명쯤 되면 좋겠다고 편집장은 속으로 생각했던 것인데, 그 마음을 다른 기자들이 어찌 알아차렸는지 알 수 없다.
편집장의 분신은 마감 하루 전날, 문자를 보내왔다. “혼자선 중과부적이네요.” 그는 며칠째 충남 태안 아니면 서산 어디를 헤매며 성완종의 진실을 더듬고 있다. 분신의 마음은 편집장과 같다. 이 또는 JTBC와 동격은 아니다. 이 시사주간지 편집장은 손석희 사장 또는 박래용 편집국장과 비교할 만한 위인이 아니다. 열네댓 명의 기자로는 200여 명의 기자를 감당할 수 없다. 그러니 죽음 직전의 정치인이 전화를 걸어올 일 없고, 방대한 개인 기록을 건네주는 이도 없다. 게다가 ‘성완종 사건’에 한국 모든 언론이 달려들었다. 중과부적인 것이다.
언론학자 대니얼 핼린은 기사 영역을 ‘합의’ ‘(합법적) 논쟁’ ‘일탈’로 나눴다(그림 참조). 한국 언론의 독도 보도는 완전한 ‘합의’ 영역에 있다. 국회의원 적정 수에 대한 뉴스는 찬반이 맞서는 ‘논쟁’ 영역에 속한다. 김기종의 주한 미국대사 습격은 ‘일탈’의 영역이다.
언론 공정성 연구에서 비롯한 핼린의 범주를 차용하자면,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합의 영역의 보도는 많은 독자를 끌어들인다. 그래서 언론의 대표상품은 대부분 애국심, 민족주의, 반공주의 등에 바탕한다(종합편성채널의 지속적 ‘반북 보도’를 보라).
반면 일탈 영역에 대한 보도는 오래가지 않는다. 일탈은 안정감을 희구하는 대다수를 불편하게 만든다. 독자는 일탈 이슈를 이례적 사건으로 치부하고 일시적으로만 소비한다. ‘냄비식 보도’는 주로 일탈 영역에 대한 것이다. 우르르 보도했다가 화르르 사라진다.
그런 점에서 ‘성완종 사건’ 보도는 완벽한 기사 상품이다. 정치 부패 추방은 완전한 합의 영역에 있다. 좌우를 망라하여 모든 이의 관심사다. 언론이라면 이 시장에 뛰어들고 싶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은 녹취록을 오랫동안 보도할 심산이었겠고, 견디지 못한 JTBC는 그것을 가로채 한번에 보도한 것이다.
여기 ‘세월호 사건’이 있다. 성완종 사건을 취재하는 저 많은 매체와 기자들이 달려들어 갈가리 찢긴 사실의 파편을 이어붙였다면, 지금쯤 그 진상의 대강을 온 국민이 알게 됐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은 이례적 비극이라는 ‘일탈’의 심해에 머물러 있다. 1주기를 맞아 각 언론이 기사를 내보냈지만 냄비 보도에 그칠 것이다. 계속 보도하는 것은 ‘시장적 오판’이라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다른 가능성을 보고 있다. 눈 돌리고 싶은 비극이지만, ‘세월호 사건’은 박애와 정의를 강하게 자극하는 뉴스이기도 하다. 박애·정의는 인류 보편의 이데올로기다. 기왕의 합의 영역에 있는, 그래서 많이 읽어볼 것이 확실한 기사를 향해 모든 언론사가 달려가는 동안, 우리는 일탈 영역에 놓인 기사를 합의 영역으로 상향시키려 한다. ‘합의’와 ‘일탈’의 긴 해자를 메워보겠다. 박애·정의에 호소하는 사실을 팔아보겠다. 이번호에도 단독 기사를 내놓는다.
물론 정치 부패 폭로는 언론의 책무다. 큰 시장 구석에서 좌판이라도 벌이긴 해야겠다. 편집장의 분신은 다음주에도 붉고 뜨거운 마음으로 성완종의 진실을 찾아나설 것이다. ‘제패하겠다는 욕심으로 큰 나라들에 대항해선 안 된다(중과부적)’고 말한 맹자는 그 해법도 내놓았다. ‘천하의 마음을 얻어라. 강하지만 간악한 나라를 버리고 작지만 아름다운 나라를 따르는 이가 늘어날 것이다.’ 작지만 아름다운 매체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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