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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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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에는 왜 유승민이 없을까

보신주의가 이념 돼버린 민주당… 철학과 비전을 보고 싶다
등록 2023-12-08 12:34 수정 2023-12-09 05:36
2023년 11월 서울의 한 대학에서 강연하는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연합뉴스

2023년 11월 서울의 한 대학에서 강연하는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연합뉴스

이번엔 꼼수 위성정당인 비례연합정당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눈치게임 중인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윤석열 정권의 폭주와 퇴행을 막으려면 2024년 총선에서도 민주당이 최대한 많은 의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동안에도 계속 압도적 1당이었는데 뭘 한 걸까. 막은 게 이 정도인가. 그렇다면 막으나 안 막으나 별 차이가 없지 않을까. 어떤 폭주와 퇴행을 막기 위해 다른 폭주와 퇴행이 과연 꼭 필요한가.

지금 민주당을 지배하는 유일한 이념은 보신주의 같다. 정권에 대항하는 거대 야당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 그걸 위해 단결과 통합을 해야 한다는 것. 그런데 그렇게 해서 민주당이 만들어갈 세상이 눈에 잘 그려지지 않는다. 설명해주는 이도 없다. 민주당에는 왜 유승민이 없을까.

최근 문화방송(MBC) <100분 토론>에서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인구소멸을 우리 사회의 가장 절박하고 시급한 문제로 꼽았다. “아이 낳아 기르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경제적 시간적 지원을 찔끔찔끔 말고 확실하게, 노동·교육·주택 다 아울러 혁명적으로 하자”며 “10년 안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국가부채가 80~90%까지 가도 된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했다. 청년노동과 관련해서는 “사실 인생의 80%는 운”이라며 능력치에서 큰 차이 없는 이들이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착취당하는 구조를 개탄했다. 인구문제 해결 수단처럼 내세워지는 이민 정책은 손쉽게 사람을 부리는 단기 고용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유승민이 만들고 싶은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그려진다는 게 이날 토론을 본 이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댓글창에는 유승민에게 위로받았다는 반응이 줄을 잇는다.

그런 세상, 정치가 앞장서서 펼쳐야 한다. 그러려면 기득권에는 위협적이고 국민에게는 매력적인 정치인들이 나와줘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의 민주당은 덩치가 클 때나 작을 때나 그런 꿈을 꾸는 이들의 산실이었다. 지금의 민주당은 그런 역동성과 희망을 품고 있는가. 미래를 내다보고 나라를 이끌 철학과 비전을 누구 하나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다. 그저 의석수 계산뿐이다.

당내 인사들은 공천을 앞두고 저마다 납작 엎드려 이재명 대표의 눈치를 살핀다. 이 대표는 강성 지지자들의 엄호 속에 ‘정치의 구루’라도 되는 양 말을 아끼거나 아리송한 화두만 던진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유지와 위성정당 방지 목소리가 당 안팎에서 높지만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고만 한다. 수차례 약속하고 다짐했던 선거제 개혁 약속을 뭉개면서도 최소한의 정치적 알리바이도 대지 않는다. 달라진 거라곤 심화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리더십 리스크뿐인데.

윤석열 정권의 행태가 날이 갈수록 무도해진다고 이 대표를 옹호하는 이들은 말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 대표는 자신의 정치적 존재 이유를 설명할 ‘무기’ 하나쯤 갖고 있어야 하지 않나. 도덕성에 흠이 났다면 정책과 계획으로라도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이재명이 만들어갈 세상은 어떠한지. 특별검사와 탄핵을 쌍절곤처럼 휘두르며 간간이 기합만 넣는다고 윤석열 정권이 달라지지도, 국민의 삶이 바뀌지도 않음을 우리는 이미 안다.

진작부터 대통령이 되려던 사람이 도지사 시절 법인카드를 몇 푼이라도 허투루 썼다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진솔한 사과가 먼저이다. 사과도 능력이다. 검찰이 과잉수사를 남발하고 정권의 보위부처럼 구는 것을 모두 똑똑히 본다. 그건 그것대로 심판받을 일이다. 그러나 이 대표와 민주당의 무능과 무력까지 검찰 탓은 아니지 않나.

김소희 칼럼니스트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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