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욕을 너무 많이 해서 이재명이 이렇게 맥을 못 추는 건가.” 그 모든 남자는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었다는 걸 깨닫고 일찍이 홀로 탄트라 수련법을 익혔던 한 친구가 설파했다. 정치적 욕망은 내려놓았는데 정치적 욕을 끊지 못한 탓이라나. 그렇다면 혁신적인 욕을 해야겠다고 다른 친구가 말했다. “난 이재명 아직도 단식하는 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안 보인다. 아무것도 안 하지는 않겠지만 아무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오랜만에 나온 뉴스도 청년 비하, 여성 비하 논란에 대한 한 박자 늦은 언급뿐이다. 청년들을 이기적 존재로 묘사한 당 홍보 문구가 공개돼 비판받자 “지도부 내 레드팀이 필요하다”고 했고, 최강욱 전 의원의 ‘암컷이 설친다’ 막말에는 “관용 없이 엄정하게 대처하겠다”고 했다. 둘 다 한참 지탄받고 조정식 사무총장이 사과하고 난 뒤에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와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내놓은 말이다. 마지못해 얹혀가며 점 하나 찍은 느낌이다. 아무리 재판으로 정신없다고 해도 이렇게나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니. 그가 이렇게 수줍고 겸손한 분이었나.
덩달아 당도 조용하다. 국토균형발전에 명백히 역행하는 국민의힘발 경기도 김포시의 서울 편입 이슈에 대해서도 열흘 넘도록 옳다 그르다 분명한 말 없이 여론 눈치만 살피더니, 정치권 최대 현안인 선거제 개편 문제에는 개별 의원들의 집합적 목소리만 나올 뿐 당 차원에서는 뭉개고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대표가 본인 입으로 여러 번 약속한 연동형 비례제 확대와 위성정당 방지 대책에 대해서조차 거의 묵언 수행 수준인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참다못해 소속 의원 52명이 나서 위성정당 방지법부터 통과시키자고 목소리를 높여도 가타부타 말이 없다. 진짜 딴맘이 있는 건가. 국민의힘과 야합해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퇴행하려는 속셈이 맞나. 민주당 지도부의 “아직 정해진 게 없다”는 입장은 의구심만 더 키운다. 여의도 번역기에 넣으면 이 말은 ‘그럴 수 있다’거나 ‘이미 그쪽이다’라는 뜻이니까.
과거의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하는 데 대한 반발이 부담스러운지 경남을 호남으로 붙이고 경북을 강원·충청과 묶는 등 전국을 세 개의 권역으로 나누는 방안을 흘린다. 이건 우리가 익히 알고, 일찍이 노무현이 주창했던, 지역주의 타파와 다양성 확보를 목적으로 했던 그 권역별 비례대표제와는 취지가 전혀 다르다. 나는 영남에서 너는 호남에서 사이좋게 의석을 보장받겠다는 것으로 사실상 소수당 말살 제도이다. 이탄희 의원 등과 당 밖 시민사회단체들이 뭐라고 떠들건 반윤 정서에 올라타 총선까지만 가면 의석을 ‘줍줍’ 할 수 있다고 믿는가본데, 민주당의 가치와 지향이 언제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됐나.
이 와중에 들리는 말이라곤 온통 이재명 대표가 당 장악을 끝냈다, 내년 총선은 이재명 얼굴로 치른다, 공천을 앞두고 이탈하는 현역의원은 이상민 의원밖에 없을 것이다, 등이다. 희망일까, 패배주의에 가까운 포기일까. 우리가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에 혹시 너무 많은 의석을 몰아준 건 아닐까. 민주당은 큰 덩치를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지역주의보다 더 무서운 거대 양당주의를 본다. 지역주의는 시간이 지나면 옅어지기나 하지 양당주의는 더욱 공고화돼 모든 걸 짓누르고 으깨며 간다. 양당주의를 수호하는 이런 리더십 따위나 보이려고 이 대표는 그 쪽팔림을 무릅쓰고 체포동의안 부결을 호소했던 것일까.
김소희 칼럼니스트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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