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 표 남짓 받은 지역구 의원님들께서 도대체 무슨 근거로 50만 명이 선택한 비례대표 의원보다 (자신들이) ‘진짜 의원’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나.”
와, 시원하다. 용혜인이 용혜인하네. 감탄이 나왔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2023년 4월13일 선거제도 개선을 위한 국회 전원위원회 단상에 올라 의원 정수를 줄이거나 비례대표를 축소·폐지하자고 주장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등 몇몇의 실명을 거론하며 그들이 지난 선거에서 받은 득표수를 열거했다. “원칙 없는 주장을 하면 부끄러운 줄 알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4월17일에는 “한-미 정상회담을 멈추라”고 단독 기자회견을 했다. “전략도 역량도 없는” 윤석열 정권이 지금 같은 속도로 미국과 경제·안보 의제를 다루는 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했다. 우리 포탄 수십만 발이 ‘대여’라는 이름으로 유럽에 갔거나 가고 있고, 이것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직간접으로 쓰이리라는 것이 미국 중앙정보국(CIA) 도청 문건으로 만천하에 드러난 마당이다. 전쟁 살상무기 제공을 금지한 관계법령 위반인데다 국회와도 아무런 논의가 없었다. 설상가상 윤석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무력 지원 가능성을 열어두는 국외 언론 인터뷰까지 해서 국민을 놀라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방미를 미루라는 주장을 용혜인 혼자 했다. 야당 전체가 들고일어날 만하거늘, 더불어민주당은 대미 외교는 성역이라 여겨서인지 ‘돈봉투 의혹’으로 정신이 없어서인지 별말이 없다.
그는 의원 1인의 소수정당을 대표하지만 ‘진보 생추어리(성막)’에 갇히지 않는다. 자기 선명성과 정체성을 내보이는 데 급급하지 않다. 민주당 위성정당을 통해 국회에 들어왔으나 민주당 편에 서지도 않는다. ‘고인 물 정치를 밀어내겠다’는 주장을 존재 자체로 증명한다. 비례성 다양성 대표성을 살리는 것이 우리 정치가 나아갈 길이고, 그러려면 소수당이 더 많이 국회에 진출해야 한다고 믿는다. 국회 전원위 발언 때 장내 술렁거림이 따랐으나 이에 굴하지 않았다. “의원들께서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승자독식의 지역구 중심 선거제도로 공고하게 유지돼온 거대 양당의 기득권이 무너지는 것 아닙니까.” 기세로만 보면 일당백이 아니라 ‘일당 299’라 해도 부족하지 않다. 대체불가이다.
그의 주장대로 1%의 국민, 50만 명의 지지를 받는다면 대표해 일할 자격이 충분하다. 현실화할 그의 해법은 명쾌하다. 정당득표율이 의석에 반영되도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강화하고,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며, 정당의 국회 진입 문턱을 현행 3% 이상에서 1% 이상 득표로 낮추는 것이다.
담대함과 배포는 타고난 성정이겠으나, 용혜인이 용혜인인 더 큰 이유는 공천권을 쥔 지도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이해관계로 발목 잡는 지역 실세들의 비위를 맞추지 않아도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탄희 의원의 말마따나 선거법 개혁의 핵심은 정치 다양성 확보에 있다. 지금 민주당이 우왕좌왕하는 이유도 단일대오의 논리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정권의 위험천만한 폭주를 막기는커녕 집안일 수습도 못하고 있다.
다양성을 위해서는 기득권을 깨뜨리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하기 위해 선거를 하는지 선거하기 위해 정치를 하는지 모를 이 끝도 없는 지루한 땅따먹기를 계속 봐야 한다. ‘김부겸 정도 되면 대구 출마해도 당선되고 유승민 정도 되면 공천을 안 주려야 안 줄 수 없고’ 용혜인 정도 되면 계속 비례대표를 해도 되지 않겠는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김소희 칼럼니스트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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