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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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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성’ 노리는 감사원…국책연구기관 위축 우려

[감사원을 감사하라①]
국책연구기관의 선임연구위원들 컴퓨터 포렌식 등 이례적 감사,
감사방해죄 규정한 감사원법 제51조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등록 2022-10-22 17:10 수정 2022-12-22 14:17
2022년 10월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감사원 앞 모습. 한겨레 김혜윤 기자

2022년 10월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감사원 앞 모습. 한겨레 김혜윤 기자

감사원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이어 문재인 정부의 대표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까지 정조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주요 인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요청 다음 수순으로 경제정책에 관여한 인사들까지 감사원이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의 표적은 지금까지 크게 두 종류로 나뉘었다.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위원장·기관장들, 서해 피살 사건과 탈원전 사업 등 정치적으로 민감했던 사안.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됐다. 정책 판단과 이를 뒷받침하는 학문적인 연구 결과까지 감사 대상을 넓혔다.

두 선임연구위원, 2018년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결과 반박

<한겨레21>이 국책연구기관 관계자 등을 취재한 내용을 종합하면, 최근 감사원은 전 통계청장(2018년 8월~2020년 12월)인 강신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과 홍민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컴퓨터를 포렌식(디지털 저장장치에 남은 자료를 추출)했다. 두 사람에 대한 감사, 특히 감사원이 이들에게서 가져간 자료 목록은 상징적이다. 감사원이 공개적으로 밝힌 ‘국가통계시스템 운영 및 관리 감사’의 범위를 넘어 소득주도성장 정책 전반을 들여다보겠다는 의도가 명확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강신욱·홍민기 박사는 2018년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효과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일 때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반박하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통계청 조사에서 소득 하위 20%에 해당하는 1분위 소득이 전년보다 낮아진 것으로 나타난 이유는 가계동향조사 표본에 저소득층이 새로 많이 들어오면서 최하위 소득이 대폭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일종의 ‘착시 현상’이 발생했다는 내용이 연구 결과의 뼈대였다. 당시 야당이던 국민의힘은 통계청 조사를 근거로 ‘소득주도성장 실패’라고 문재인 정부를 공격했고,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여야가 치열하게 맞붙는 정치 쟁점으로 떠올랐다. 강신욱·홍민기 박사 등이 쓴 연구보고서는 청와대에도 올라갔다. 통계를 둘러싼 논란은 당시 황수경 통계청장 경질로 이어졌다.

최근 감사원은 ‘국가통계시스템 운영 및 관리 감사’를 진행한다고 밝히면서, 통계청에 2017년 이후 △가계동향조사 △경제활동인구조사 등 5개 자료를 요구했다. 그런데 강신욱·홍민기 박사의 컴퓨터에서 추출해간 자료는 그 범위를 넘어선다.

2022년 9월27일, 세종에 있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강신욱 선임연구위원 사무실에 감사원 관계자들이 들이닥쳤다. 예고 없이 방문한 감사관들은 ‘가계동향조사의 작성과 공표 등에 관한 사항’ 등이 적힌 공문을 제시하면서 컴퓨터에서 연구자료를 추출해갔다. 감사관은 가계동향조사라는 단어가 들어간 자료뿐 아니라 소득주도성장, 소득 분배, 청와대, 기재부 등의 단어가 들어간 파일을 샅샅이 뒤져서 가져갔다고 한다. 당시 상황을 전해들은 관계자들에 따르면, 감사관들은 강 연구위원이 제출에 동의하지 않은 자료 파일까지 가져갔다고 한다. 10월5일 한국노동연구원 홍민기 선임연구위원 사무실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감사를 거부하거나 자료제출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는 감사원법 제51조를 들어 고발이나 처벌될 수 있다고도 압박했다.

통계청 직원 아닌데도 감사 대상

통계청장을 지낸 강신욱 박사와 달리 홍민기 박사는 통계청 직원이 아니어서 ‘국가통계시스템’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데도 감사 대상에 포함됐다는 점은 특히 의아한 대목이다. 감사관들은 2018년 연구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등을 자세히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이 공무원 직무 감찰이라는 자신의 직무를 넘어서 ‘학문과 연구의 자유’를 침해하는 선까지 넘나든 셈이다. ‘국책연구기관의 모든 연구활동까지 감사 대상으로 삼으면 연구자들의 자유로운 연구가 위축될 수 있다’고 보건사회연구원과 노동연구원 관계자들이 주장했지만, 감사관들은 ‘감사방해죄’를 언급하며 자료제출 동의와 포렌식을 강요했다.

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자는 “분석 내용을 문제 삼기 시작하면 앞으로 어떤 연구자가 정부의 정책 판단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나서겠느냐. 지난 정부의 잘못을 들춰내겠다는 욕심 때문에 연구기관과 공무원을 전반적으로 위축시키고 정책 연구 수준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최근 감사원이 기획재정부의 세수 예측 실패를 감사한) ‘세입예산 추계 운영실태’ 결과를 보면 감사원 내부 역량이 전문적인 영역까지 들여다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 정책 사안은 선거를 통해서 국민의 판단을 받아야지 감사원이 그 과정을 들여다보고 ‘맞다, 틀리다’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공무원들이 ‘연구 결과를 조작하라’고 했다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다양한 연구 결과를 (감사 대상으로 삼고) 처벌할 문제가 아니”라고도 덧붙였다.

*[감사원을 감사하라]  ‘문재인 정부 수사’ 사전작업용 규정 개정? 기사로 이어집니다.

https://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2756.html

한겨레21 14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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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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