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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심의힘! ‘국민’ 대신 ‘윤심’ 넣으면 다 된다

의사결정마다 어른대는 대통령의 뜻, 이준석은 윤심 아닌 민심이 심판해야
등록 2022-09-03 09:04 수정 2022-12-09 07:34
2022년 8월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의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공동취재사진

2022년 8월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의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공동취재사진

국민의힘에서 연일 벌어지는 개그를 다큐로 받으려니 참으로 난감하다. 하지만 나도 ‘hal su it da’(할 수 있다) 정신을 ‘yuji’(유지)해보련다. 대체 어떻게 하면 당이 이렇게 길을 잃고, 대표는 당을 잃을 수 있을까. 최근 그 힌트를 국민의힘 회의장 뒷면 구호에서 발견했다. ‘시작도 방향도 목표도 국민’이라는 큰 글귀에서, ‘국민’ 대신 ‘윤심’이란 글자를 넣으면 모든 게 선명해진다.

대통령선거 때부터, 아니 입당 전부터 자기를 ‘비빔밥 속 당근’ 취급한 이준석 전 대표에게 품었을 윤석열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가 ‘시작’이었고, 그것을 핵심 관계자와 호소인이 앞다퉈 헤아리면서 ‘방향’을 잡았고, 결국에는 이준석 축출이라는 ‘목표’를 이뤄냈다면 말이다. 비극은 이 일이 ‘형님’을 모시는 ‘패밀리’가 아니라 공당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애초 이준석 전 대표의 성상납 의혹 등이 진짜 문제였다면 그에 대한 경찰 수사부터 지켜봤어야 했다. 당원소환제라는 떳떳하고도 불가역적인 방법도 있었다. 법원 결정에 따라 비대위를 접고 최고위원회 체제로 돌아가기만 했어도 혼란은 수습됐을 것이다. 하다못해 비대위 체제를 고수하자는 의원총회의 결론을 박수가 아니라 투표로라도 정했다면 어땠을까.

우격다짐으로 ‘비대위원장 직무대행’이 이끄는 사실상 ‘비대위의 비대위’는 추석 연휴 뒤 같은 재판부의 판단에서 역시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그다음은 어찌할지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이런 무능과 무감각은 이 정부 출범 뒤 자주 봐온 모습이다. 눈치만 보고 판단을 하지 않아서다.

이준석을 지지하지 않아도 이준석을 이렇게 ‘도려내는’ 방식에는 반대한 이가 많다. 당대표 이준석은 윤심이 아니라 당심으로 심판하는 게 옳았다. 정치인 이준석 역시 윤심이 아니라 민심으로 심판해야 한다.

이준석은 당 윤리위원회 징계 뒤 빠르게 자기 논리를 개발했다. 급기야 대통령을 ‘신군부’와 ‘절대자’에 빗대기까지 했다. 자신에 대한 수사가 일단락되기 전까지는 박해받는 모습, 여당 속 야당 모습을 줄곧 내보일 것 같다. 정치적 생명줄이 걸렸으니 안 그럴 이유가 없다. 여차하면 당 안팎의 구태를 다 끌어안고 뛰어내릴 기세이다. 그렇게 ‘논개’가 될 것인가. 그러진 않을 것 같다. 그에게는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는 의지보다는 절대 지지 않겠다는 투지가 넘치기 때문이다.

유머의 천하람, 센스의 김재섭, 뚝심의 김용태 등 호남과 수도권 험지의 당협을 이끄는 ‘국민의힘 힙스터’들이(흰머리 김근식도 포함해) 이준석 징계 과정과 비대위 체제의 부당함을 설파하지만, 이들이 모두 ‘이준석의 편’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도 역시 민심을 민감하게 살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싸움 구경은 좋아하지만 싸움꾼을 리더로 뽑지는 않는다.

물이 마르면서 강바닥에 있던 유적과 유물이 드러나듯이, 지지율이 빠지고 정치력도 증발하니 당의 바닥에 있던 낡은 것들이 노출된다. 위험한 것들도 보인다. 당장 힘센 쪽 눈치만 보는 기회주의, 선당후사를 내세워 시비를 가리지 않는 책임 회피, 누군가에게 뒤집어씌우는 희생양 만들기, 모나지 않게 잇속만 챙기겠다는 대세 추종주의 등이 그것이다.

저마다 용산에서 날아올 ‘체리따봉’을 기다리며 충성심을 호소하고 존재감을 증명하다보니 당은 그야말로 ‘대환장적’ 상황에 처했다. 원내대표는 ‘동네 바보형’이 됐고 대통령의 핵심 관계자는 ‘숨은 비겁자’가 됐다. 이 모든 게 윤 대통령의 뜻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당내 의사결정 과정마다 어른대는 윤심에 대해 적극 부인하지도, 해결에 나서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책임도 오롯이 져야 한다. ‘윤망진창’이다. 당만 욕먹고 망가지는 것으로 끝날까. 입술이 사라지면 곧 이가 시리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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