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대통령 집무실을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 두겠다고 밝힌 뒤 군 안팎에서는 이참에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합참)를 육해공군 본부가 있는 충남 계룡시 계룡대 등으로 옮기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대통령실이 오면서 국방부 사무실이 서울 시내 여러 곳으로 흩어지자 강원·충청 지역에선 분산 배치된 국방부를 해당 지역으로 옮기자는 주장이 나왔다. 강원도 출연기관인 강원연구원은 4월6일 ‘대통령은 용산으로, 국방부는 강원도로’란 보고서를 내어 분산 배치된 국방부가 장차 통합될 것이라며, 강원도가 국방부 유치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원도로 국방부를 이전하면 지나친 수도권 집중에 따른 부작용을 해소하고 지역균형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였다.
충남 계룡 시민들과 함께 7월 취임한 김태흠 충남도지사도 적극 나서고 있다. 김 지사는 육해공군 본부(계룡), 육군훈련소·국방대학교(논산) 등이 있는 충남으로 국방부와 육군사관학교를 이전하면 국방력 강화나 지역균형발전 측면에서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1993년 3군 본부의 계룡대 이전 완료 이후 군 내부에서도 국방부·합참의 계룡대 이전은 30년 묵은 현안이다. 특히 국회 국정감사나 국방장관·합참의장 청문회 때면 빠짐없이 등장했다. 찬성하는 쪽은 북한 장사정포 사정권에 놓인 서울의 국방부와 합참을 계룡대로 옮겨 전쟁 발발시 안전성을 확보하고 육해공군의 합동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하는 쪽은 △국방부·합참은 국가통수기구(청와대)와 근접해 서울에서 전쟁 지도를 보좌해야 하며 △계룡대 이전시 ‘유사시 서울 사수’에 대한 믿음이 흔들려 국민의 안보 불안감이 커진다는 이유로 현재 위치가 적절하다고 봤다.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 개전 3일 뒤 서울이 북한군에 점령된 이후 ‘서울 사수’는 한국 안보정책의 기본값이 됐다. ‘서울 사수’는 1970년대 임시행정수도 이전 때도 장벽으로 등장했다. 1978년 1월18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임시행정수도) 필요성은 서울의 인구가 너무 많다는 것과 국가안보상 휴전선에 너무 근접돼 있어 750만 서울 인구가 적의 포화 사정거리에 살고 있다는 두 가지”라고 설명했다. 당시 야당은 임시행정수도 이전을 수도권 사수 개념 포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노태우 정부는 국방부와 합참은 서울 용산에 그대로 남기고, 서울에 있던 육해공군 본부를 계룡대로 이전했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국토 균형발전, 수도권 인구 분산을 이전 이유로 내세웠지만, 3군 본부를 유사시 북한군 장사정포 사거리에서 빼려는 안보상 이유가 컸다. 당시 3군 본부가 계룡대로 내려간다고 하자 ‘서울 사수’에 의구심이 커졌다. 1989년 6월15일 현재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자리에 있던 육군본부를 계룡대로 옮길 때 이종구 육군참모총장은 “3군 본부 이전으로 서울 사수 개념이 퇴색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질 우려가 있으나 이전은 군 작전을 용이케 해 수도권 방위에 도움이 되며 국방부와 합참이 서울에 남아 있을 것이므로 수도권 사수에는 지장이 전혀 없다”고 설명해야 했다.
미국에선 국방부-합참-육해공군 함께 펜타곤에잔류한 국방부와 합참이 ‘서울 사수’의 상징처럼 됐다. 그럼에도 군 내부에는 국방부와 합참도 계룡대로 이전해서 3군 본부와 각 군의 작전 부대를 통할하는 게 서울 사수 작전에 오히려 효율적이란 의견이 계속 나왔다. 이런 주장을 펴는 쪽은 미국 예를 든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오각형 건물인 펜타곤에는 국방부, 합참, 육해공군이 함께 있다. 이와 달리 우리는 국방부, 합참, 육해공군 본부 건물이 따로 있다. 계룡대에 근무했던 한 영관급 장교는 “국방부, 합참, 방위사업청, 국회가 있는 서울에서 국방정책 결정이 이뤄져 수시로 고속철도(KTX)를 타고 서울 출장을 다녔는데, 주요한 정책 결정이 늦어져 힘들었다”며 “계룡대 근무자끼리는 ‘KTX 호남선 운영수입의 상당 부분을 계룡대 간부들이 메워준다’고 농담하곤 했다”고 말했다.
1990년대까지는 한반도 안보 상황이 불안해지면 ‘서울 사수’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도 덩달아 높아졌다. 2000년 이후 남북 경제력 격차가 커지고 한국의 재래식 군사력이 세지면서 ‘서울 사수’에 대한 불안감도 낮아지고 있다.
현재 서울 용산 주한미군기지에 한미연합사가 있는 것도 국방부와 합참이 ‘긴밀한 한-미 협의를 위해’ 용산에 계속 있어야 할 큰 이유로 꼽혔다. 2022년 안에 한미연합사 등 미군이 대거 경기도 평택으로 옮길 예정이다. 국방부와 합참이 용산에 남아야 할 근거 중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다.
5월17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서울 남태령 근처에 있는 수도방위사령부 터 안에 2천억~3천억원을 들여 합참 청사를 신축해 2026년까지 합참을 옮기겠다고 밝혔다. 현재 서울 용산에 있는 합참 청사를 국방부와 합참이 나눠 쓰고 있다.
국방부가 설명한 합참 청사 신축 이전의 이유는 “전·평시 일원화”다. 현재 합참 근무자들은 평시에는 용산 합참 청사에서 근무하다 전시나 한미연합연습 때는 수도방위사령부 근처 비(B)1벙커로 옮긴다. B1벙커는 유사시 합참과 국방부뿐만 아니라 대통령과 정부 주요 기관들이 들어와 한국의 전쟁지휘부를 꾸리는 곳이다.
2026년 합참이 남태령에 청사를 신축해 용산에서 나가면 서울 곳곳에 분산 배치된 국방부 사무실들이 현재 합참 청사에 통합 배치될 예정이다. 5월 중순 ‘합참 남태령 이전, 국방부 현 위치’로 정리되자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 이전 논의가 사그라들었다.
국방부는 7월22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수도권을 위협하는 북한 장사정포에 대응하기 위해 장사정포 요격 체계를 애초 계획한 2029년에서 3~4년 앞당겨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한반도 안보 상황이 나빠지면 북한이 ‘서울 불바다’ 같은 험한 말로 한국을 위협해왔다. 북한이 휴전선 이북에서 포를 쏘면 닿을 정도로 서울이 너무 가깝기 때문이다.
장사정포 대책에는 ‘포탄을 미사일로 잡겠다’는 요격 무기체계 차원만 있는 게 아니다. 안보를 위해서라도 수도 이전이 필요하다고, 44년 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미 강조했다.
권혁철 <한겨레> 통일외교팀장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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