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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가장 ‘민주당스러운’ 김동연

넓적다리에 살이 쪄서 더는 말을 타지 못하는 장수 같은 민주당을 바꿀 수 있을까
등록 2022-04-05 19:09 수정 2022-04-06 01:05
공동취재사진

공동취재사진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인물난에 시달린다고 한다. 대선 결과에 책임지고 사퇴한 송영길 전 대표 차출론이 나오고 이낙연 전 대표 이름도 오르내린다. 이재명 등판설까지 나온다. 민주당은 인물이 없는 게 아니다. 어떤 인물로든 뭘 하려는지가 없다. 오죽 없으면 경기도지사가 되겠다는 이들이 “이재명과 문재인을 지키겠다”고 하는가 말이다. 아니, 도민을 지켜야지 왜 그분들을 지키나.

민주당은 지난 대선 막바지 정치교체를 하겠다며 대통령 4년 중임제, 결선투표제,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등을 발표하고 위성정당 방지법과 기초의원 3인 이상 선거구 확대 등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다당제와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방안으로, 일부는 당장 6월 지방선거에 적용돼야 할 내용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절대다수인 국회는 조용하다. 법 개정 없이도 선거구 획정을 할 수 있는 광역의회에서 힘쓴다는 소식도 없다. 반대하는 국민의힘과 ‘티키타카’ 하듯 가끔 입씨름만 한다. 대신 그저 누굴 어디에 꽂느니 하는 작대기 긋기만 무성하다.

소수당인 새로운물결과 합당하는 것도 지방선거를 앞둔 다급함으로 보일 뿐이다. 큰 당이 작은 당을 먹는, 혁신은커녕 구태에 가깝다. 이조차 김동연 한 명을 영입하기 위한 형식적인 과정임을 모두가 안다.

김동연(사진) 새로운물결 대표는 “승자독식 구조와 기득권 정치판을 깨고 다당제를 포함한 여러 기회를 만드는 데 힘을 합치겠다”고 말했다. 다당제를 위해 두 당을 합친다는, 말하자면 한 당을 없앤다는 ‘논리적 모순’은 아랑곳없이 곧바로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으로선 수도권 수성을 위해 형편 되는 대로 돌려막아야 하고, 김동연으로선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을 테니까.

거대 양당 체제를 흩트리겠다고 다짐해왔던 김동연은 결국 ‘투항’했다.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할 때만 해도 몇 가지 정치개혁 과제를 함께 이뤄낸다는 명분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그나마도 없다. ‘정치교체 공동추진기구’를 민주당과 함께 구성하겠다는 선언이 고작이다. 창당한 지 반년도 안 된 사실상의 1인 정당이라 해도 나름 전국 조직을 갖춘 당 안팎에서 대표의 이런 선택에 비판도 우려도 훈수도 나오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뜻을 함께해서인가, 아니면 애초 ‘정치적 결사’와는 거리가 멀어서인가.

어느 쪽이든 이게 김동연이 처한 현주소다. 일머리 있고 일 욕심 있는 김동연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것 같다. 돈 안 드는 선거를 한다며 운동화 신고 걸어 유세를 다닌 ‘결벽적’인 과정을 참고하면 단지 자리 욕심으로만 보이진 않는다. 무거운 선택이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정의당을 통해 제3당의 길이 얼마나 험한지 익히 봐왔다. 김동연에게 풍찬노숙하며 지는 싸움만 하라고, 소신을 지키라고 요구할 마음은 없다. 다만 그가 민주당의 쓸모에 따라 휘둘리지는 않았으면 한다.

경기도지사 출마가 능사는 아니었다. 당장 지방선거 공천 혁신의 길, 조금 멀리 당권 도전의 길도 있었다. 국회의 선거법 개정과 개헌에 전력을 다하는 일도 그가 갈 길이었다. 출마 선언을 하면서 추대를 바라는 모습은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꺾꽂이가 아니라 당당히 경선을 거치기 바란다. 싸우고 돌파하는 과정에서 다당제를 위한 최소한의 기틀과 여지를 민주당 안에 심어야 한다.

그를 통해 ‘새로운 정치’의 ‘유쾌한 반란’을 기대했던 이들은 이제 눈을 돌리거나 숨을 고를 수밖에 없게 됐다. 누구보다 이들의 정서와 눈높이에 민감한 김동연이 자신을 더 믿었으면 좋겠다. 흙수저 출신으로서 삶의 서사나 관료 경험, 정치교체의 노력은 어쩌면 더불어민주당 밖에서 가장 ‘민주당스러운’ 모습이었다. 오랫동안 잃어버린, ‘그 민주당’ 말이다.

지금의 민주당은 비육지탄이다. 넓적다리에 살이 너무 쪄서 더는 말을 타지 못하는 장수가 떠오른다. 김동연이 민주당을 바꾸길 기대해본다. 그것도 또 다른 반란이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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