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를 보지 않는 사람은 두 부류다. 진짜 눈치가 없거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거나. 열차 앞좌석에 구둣발을 올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후자일 테고, 그 장면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이는 전자일 테다.
윤석열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았다. 성품이나 인격과는 별개이다. 고개 숙여본 적 없는 이 특유의 권위적 태도가 자주 묻어난다. 참모들은 왜 말리기는커녕 자랑했을까. 윤 후보와 친해 ‘보이’려는 조급함이 눈을 가렸을 것이다. 바로 그게 문제다. 응당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것.
윤석열은 한 인터뷰에서 집권하면 적폐 청산 수사를 “해야죠, 해야죠, 돼야죠”라고 말해서 ‘정치 보복’ 논란을 불러일으킨 지 며칠 되지도 않아 검찰권을 유례없이 강화하는 내용의 공약을 대뜸 발표했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없애고 독자적인 예산편성권을 갖게 하며 직접수사 범위를 확대하겠단다. 다른 공약 발표 때와는 달리 구체적이고 확신에 찼다. 잘 아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승기를 잡았다는 자신감이거나 논란을 밟고 가겠다는 의지이기도 할 것이다. 무소불위 검찰공화국에 대한 국민 다수의 우려는 안중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아무리 미워도 또 싸우는 꼴만은 도저히 못 보겠다는 유권자의 갈등도 고려하지 않는다. 나는 그의 이런 두려움 없음이 두렵다.
그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한 발언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현 정권이 검찰을 통해 범죄를 저질렀다고 단언했고, 자기 측근을 지칭하며 “서울중앙지검장 하면 안 되냐”고 했다. 문맥상 엉겁결이 아니다. 지지층 결집을 위한 계산된 발언도 아니다. 마치 음성 지원이라도 되는 듯 열과 성이 느껴졌다. 내심으로는 억울하더라도 겉으로는 ‘국민 통합’을 추구하는 척이라도 해야 할 게 아닌가. 대통령 후보라면 마땅히 져야 할 그 무게도 못 느끼는 이가 나중에 대통령의 무게인들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까.
큰 권력을 가졌다고 느낄수록 자제력을 잃기 쉽고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을 덜 쓴다. 권력의 속성이다. 나아가 “규칙이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듯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하기도 한다.(브라이언 클라스, <권력의 심리학>)
윤석열은 위험하다. 이미 검찰총장으로서 유력 대권 후보로서 권력의 맛을 봤고, 더 큰 (더 나쁜) 권력에 당했다는 피해의식까지 더해 자기 서사를 완성했다. 게다가 과반인 정권교체 여론에도 올라탔으니 “내가 권력을 잡는 게 옳은 것”이라는 신념이 굳게 자리잡아버렸다. 측근 검사장에 대한 “거의 독립운동처럼 해온 사람”이라는 평은 자신을 향한 말로 들린다. 그러니 자신과 배우자를 포함한 가까운 이들의 허물 따위는 별것 아니다. 좀 봐주더라도 괜찮은 것이다. 더 크고 나쁜 악과 싸워야 하니까. 1980년대 운동권 세력이 30년간 내면화한 신념을 불과 3년도 안 돼 속성으로 갖게 되다니, “학습능력은 빠르다”더니 이 대목에서는 인정해줘야겠다.
윤석열을 둘러싼 사람들은 어떤가. 겸손한가, 절실한가, 눈치라도 보나. 이미 여론보다는 권력자 윤석열의 눈치를 더 보는 것 같다. 배수진을 치듯 단일화 제안을 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손바닥 위의 원숭이로 조롱했다.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정책 질의에는 아예 ‘답변하지 않음’으로 ‘없는 유권자’ 취급했다. 열차 안 ‘쭉뻗’에는 ‘다리 경련’이라는 누가 봐도 실소할 해명을 내놓았다. 뻔뻔해지기로 작정한 듯하다. 후보가 “(왜곡 보도엔) 언론사 전체를 파산하게도 할 수 있는 강력한 시스템”을 강조했는데, 후보 캠프는 곧바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식으로 우긴다. 진짜 후보가 말만 적게 하면 된다고 여기는지 언론 인터뷰도, 토론도 막아선다. 대선은 게임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 얻어지는 승리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거짓말하더라도 눈치를 보면서 하는 사람과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 하는 사람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위험한지 생각 중이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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