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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후보와 더 나쁜 후보의 상부상조

누가 돼도 된 뒤가 더 걱정인 선거, 유권자는 저마다 ‘정신승리’ 중
등록 2022-02-09 15:48 수정 2022-02-10 10:59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부인 김혜경씨(왼쪽).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 공동취재사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부인 김혜경씨(왼쪽).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 공동취재사진

데칼코마니가 따로 없다. 정책도 거짓말도 닮았다. 리스크마저 팽팽하다. 두 거대 정당의 대선 후보들이 그렇게 서로를 지탱해주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내가 아무리 잘못해도 상대가 더 잘못하면 나에게 기회가 온다”고 말했다. 2022년 2월2일 김동연 새로운물결 후보와의 토론에서 양당 체제를 비판하며 한 말이지만, 의미심장하다. 비슷한 시간 그의 부인 김혜경씨가 경기도 공금으로 살림살이한 정황이 뜨겁게 떠올랐다. 양자 토론을 고집하다가 끝내 무산된 바람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쪽이 난처해진 상황이었는데, 이렇게 또 이 후보 쪽이 엄청난 배우자 리스크로 지지대가 돼준다.

이상한 배우자와 더 이상한 배우자를 둔 나쁜 후보와 더 나쁜 후보 가운데 대통령이 된다면? 내 한 표가 거기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몰라 괴로움을 호소하는 이가 적잖다. 재고 따지며 불안, 초조, 분노, 강박을 오가다 못해 ‘해탈’의 경지를 보이기도 한다.

당장 나부터도 그렇다. 돈 잘 쓰고 화끈한 윤석열 후보 부인 김건희씨와 친구 하면 좋겠다고 여기며 윤석열이 다른 건 몰라도 관상은 좋다고 주변에 이야기한다. ‘정신승리’ 하려고 스스로 ‘약을 치는’ 기분이다. 한 친구는 이재명의 ‘가난 마케팅’에 감정이입해보려 시장 앞에서 우는 영상을 여러 번 돌려보다가 성대모사할 지경이 됐다고 한다. 다른 친구는 갱년기 증상을 심하게 겪으면 일종의 호르몬 부작용으로 도둑질도 하게 되는지 ‘전지적 김혜경 시점’에서 ‘법인카드 사적 유용’을 연구 중이라고 했다. 이 모든 게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다. 내가 뽑을 누군가가, 혹은 뽑지 않아도(서) 뽑힐 누군가가 멀쩡한 사람임을 믿고 싶은 것이다.

민주당의 오랜 지지자나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 가운데 도저히 이재명을 찍지 못하겠다는 이가 많다. 세 갈래로 나뉜다. ①여전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들 ②윤석열이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믿는 이들(그러니 당선돼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이들) ③민주당이 정신 차리려면 반드시 윤석열이 돼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찍겠다는 이들. 그중 ③을 호소하는 글을 보았는데 사뭇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윤석열이 돼도 국회 다수 의석을 민주당이 쥔 터라 그리 막가지는 못할 테니 괜찮으리란 전망도 곁들인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차라리 ‘후보 교체’를 목청껏 외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지지자들은 이런 고민까지 하는데 정작 ‘책임정치’를 하겠다는 민주당의 태도는 안일하기 짝이 없다. ‘그래 봤자 우리 대신 국민의힘을 찍을 리 없다’는 굳은 믿음이 있는 것 같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김혜경씨 의전 논란이 빚어지자 “김건희씨가 한동훈 검사장과 여러 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게 더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런 고색창연한 갖다붙이기라니. 이 와중에 이쪽이 아무리 망가져도 저쪽보다 우월하다는 오만함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정말 국민을 우습게 안다.

문재인 대통령은 주변 사람들이 자신과 같을 것이라고 믿다가 망했다. 사심 없이 선의로 충만하고 원칙을 지키리라고 말이다. 조국도 윤석열도 추미애도…. 그런 그들이 서로 맞서고 맡은 일을 엉망으로 만들 때조차 여전히 믿은 것일까, 어쩔 수 없어 우두망찰한 것일까. 둘 중 하나가 아니라면 온 나라가 두 갈래, 세 갈래 찢어져 난리를 치는데 그토록 아무런 조정과 결정을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이재명 후보는 주변 사람들이 누구인지 아예 ‘모른다’. 대장동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유동규씨를 두고 “산하기관의 일개 직원”이라고 하더니, 성남시장 시절 해외 출장까지 같이 갔던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은 “시장 재직 때는 몰랐다”고 했다. 배우자인 김혜경씨도 부창부수임이 드러났다. 도정과 무관한 가족 먹거리를 날라다주고 약 처방이나 병원 출입 등을 도와주던 이가 도청 직원인지 사적으로 고용한 비서인지 헷갈려 했다.

누가 돼도 된 이후가 더 걱정이다. 정녕 다른 길은 없을까.

김소희 칼럼니스트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정치인 관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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