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고위 공무원은 정당과 민간이 맡아야

정무직 공무원 ‘무늬만 개방직’… 민간인은 전체 대상의 4.3%에 불과
등록 2021-09-11 10:11 수정 2021-09-12 01:16
2021년 4월22일 청와대가 중앙부처·지방자치단체 공무원과 전국 공공기관 임직원들의 각종 권한 남용 행위를 집중 감찰하기로 한 가운데,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업무를 마친 공무원들이 퇴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4월22일 청와대가 중앙부처·지방자치단체 공무원과 전국 공공기관 임직원들의 각종 권한 남용 행위를 집중 감찰하기로 한 가운데,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업무를 마친 공무원들이 퇴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최재형, 김동연. 이 셋은 문재인 정부에서 최고위 관료를 역임하다가 제20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선배 관료 출신 정치인인 이회창, 고건, 반기문. 이 셋 또한 공통점이 있다. 대통령선거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관료 출신 인사라는 점이다.
관료 출신 정치인들의 미래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다만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정치에 뛰어든 뒤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그가 검찰총장에 재직할 때인 2020년 4월 검찰이 범여권 인사 고발장을 야권에 전달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김웅 당시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후보는 2020년 4월3일과 8일 야당 인사로 추측되는 인물에게 두 차례 텔레그램을 통해 고발장과 증거자료를 보냈다. 이 자료를 전달받은 이에게는 ‘전달된 메시지-손준성 보냄’이라는 표시가 떴다. 두 번째로 보낸 고발장은 미래통합당에 접수되고 넉 달이 지나 판박이 내용으로 검찰에 제출되기도 했다. 최강욱 당시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가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내용의 고발장을 접수한 ‘윤석열 검찰’은 2020년 10월15일 그를 불구속 기소했다. 두 번째 고발장의 요지대로 검찰 기소까지 이어진 셈이다.
핵심 당사자들은 의혹을 부인하거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지부진한 진실 공방이 계속 이어진다면 최악의 정치 해프닝으로 끝나겠지만, 윤 전 총장의 개입 여부까지 확인된다면 직권남용 이슈로 번질 수도 있다.
여기서 하나 궁금증이 생긴다. 관료들은 왜 정치를 비판하며 최고권력을 넘보고 있을까. 특히 문재인 정부 최고위 관료들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관료 출신 정치인들이 번번이 대통령을 꿈꾸다가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_편집자주

1987년 민주화 이후 관료들의 권한과 영향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최근엔 윤석열 전 검찰총장, 최재형 전 감사원장,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등 전직 최고위 관료가 잇따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관료들의 권한이 비대해지는 것을 막으려면 이제 관료 개혁이 필수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된 일은 행정안전부 고위공무원단(2급 이상)을 정무직으로 바꿔 정당과 민간에 개방하는 것이다. 그래야 의사 결정과 집행을 정치인이 주도하고, 관료를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2006년 노무현 정부에서 도입할 때 중장기적으로 고위공무원단을 민간에 대폭 개방할 것을 염두에 뒀다. 그러나 15년이 지난 지금도 외부 인사의 고위공무원단 임용은 극히 제한돼 있다.

미국은 고위 연방공무원 6천 명 모두 정무직

인사혁신처는 개방직 고위공무원 자리를 ‘직위 총수의 20% 범위 안에서 지정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는 20%에 크게 못 미쳤다. 2021년 8월 말 기준으로 고위공무원단 직위 1599개 가운데 실제 민간인이 임명된 자리는 68개로 전체의 4.3%에 불과했다. 95% 이상이 직업공무원이었다. 더욱이 174개 개방직 가운데 122개는 일반 개방직으로 공무원과 민간인이 경쟁하는 자리였다. 현재 112명을 뽑았는데, 이 가운데 공무원이 91명(81.2%), 민간인은 21명(18.8%)으로 공무원이 80% 이상을 차지했다. 무늬만 개방직이었다.

정대화 상지대 총장은 “고위공무원단을 직업공무원이 독점하고 정년까지 보장하는 것은 잘못이다. 변화가 빠른 사회에서 다양한 의견, 아이디어가 정부에 반영될 수 있게 고위직을 대폭 민간에 개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대통령제의 모델인 미국은 국장급 이상 고위직 연방공무원 6천여 명이 모두 정무직이다. 대통령이 자신의 철학에 따라 임명해서 중하위 관료들을 통제하게 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관료 개혁 과제는 5급 공무원 시험(행정고시) 폐지다. 더미래연구소의 최지민 연구위원은 2017년 ‘국민을 위한 관료’ 토론회에서 “과도한 공무원 계급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현재의 5급 채용 제도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 그래야 5급 시험 합격자 300명에게만 부여된 고위직 진입 통로가 개방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행정고시 합격자들은 시험 한 번으로 5급이 되고 자기들끼리 관료 기득권을 강화해 국가권력을 장악해왔다. 공무원도 다양한 경로로 뽑는 게 좋다. 시험을 치더라도 모두 9급부터 시작하게 해야 한다. 역량을 인정받으면 누구든 고위직으로 승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행정고시 존폐 두고는 의견 엇갈려

5급 시험 폐지엔 반대 의견도 있다.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조선의 과거에서 비롯한 행정고시 제도는 일종의 계층 사다리 성격이 있다. 행정고시가 없어지면 기득권층의 권력·부 독점이 우려된다. 기회의 균등이란 측면에서 행정고시 폐지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체 공무원 임용 제도를 현재의 시험에서 개방직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공석이나 새 일이 생기면 그 자리에 사람을 뽑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널리 채택하고 있는 제도다. 소준섭 박사(국제관계학)는 “이렇게 해야 공무원들의 전문성이 높아지고 승진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도 덜 수 있다. 일본처럼 사회 전체가 보수적 관료들에게 발목 잡히지 않으려면 다음 정부에선 반드시 관료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