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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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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에는 왜 이준석이 없는가

박성민 청와대 청년비서관이 직접 말하는,
낙인찍기와 편가르기가 꼭 해야 할 말을 못하게 하는 민주당의 경직성
등록 2021-06-20 16:22 수정 2021-06-22 21:41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가 2021년 5월31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가 2021년 5월31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한겨레21〉 제1368호에 실린 박성민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의 글입니다. 박 전 최고위원은 6월17일 이 글을 〈한겨레21〉에 보내왔고, 6월21일 청와대 청년비서관으로 내정되었습니다. -편집자 

‘[속보] 국민의힘 대표에 이준석… 36세 제1야당 당대표 당선’.

6월11일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당선을 알리는 뉴스였다. ‘와, 정말 당선됐구나!’ 하는 놀라움과 내면에서 요동치는 복잡하고도 뜨거운 감정이 한데 뒤섞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0선 중진’이라 불리는 이가 당대표 선거에 나간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내가 속한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국민의힘에서도 냉소 가득한 시선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설마 되겠어?’라는 아주 안일했던 생각. 그러나 이준석 대표는 묵묵히 그 냉소를 뚫고 지나갔다. 마침내 승리를 쟁취한 모습을 보며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준석 대표의 당선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당대표 당선의 의미를 비롯해 그의 과거 행보와 앞으로의 정치를 두고 끝없는 분석이 이어지며 정치권은 요동치고 있다.

젊은 사람의 정치? 전략적인 선택의 결과물

이준석 대표의 당선은 ‘세대교체’라는 화두를 정치권에 소환했다.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하지만 이준석 대표의 당선은 세대교체라는 의미를 넘어 정치 혁신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증명된 일이기도 하다. ‘젊은 사람의 정치’를 원했다는 단순한 분석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보다 훨씬 더 본질적이며 전략적인 선택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결과가 그것을 증명한다. 20대뿐만 아니라 60대, 70대 여론조사에서도 이준석 대표는 나경원·주호영 전 원내대표를 제쳤다.

이준석 대표는 날개를 달았다. 왼쪽 날개는 ‘민심’, 오른쪽 날개는 ‘당심’이다. 왼쪽 날개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뜻한다. 이는 비단 국민의힘에서만 보이는 현상이 아니다. 최근 야권 대선 주자 중 선호도 1위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여권의 대선 주자 중 여론조사 1위인 이재명 경기도지사, 국민의힘 이준석 당대표. 이들의 이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보인다. 바로 ‘0선’이라는 것. 통상적으로 서울 여의도 정치권에 오랫동안 머물며 n선의 경력을 쌓는 ‘정석’과는 다른 길을 걸어온 이들이다.

국민은 ‘변화’를 원한다, 아주 선명하게.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기성정치에 대한 환멸이 한데 모여 ‘이제는 좀 변했으면 좋겠다’라는 강한 의지가 표출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모두 예외가 될 수 없다. 남에게는 엄혹하면서 내 편에게는 따뜻한 ‘온정주의’, 내가 혹은 내 편이 하면 괜찮고 상대가 하면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내로남불’. 우리 정치는 진영논리와 내로남불에 아주 오랫동안 절여 있던 것 아닌가. 국민은 지쳤고 정치 혐오는 더욱 강화됐다.

원팀 정신 앞에 사라진 소신 발언

이준석 대표는 공격적으로 자당을 옹호하고 방어할 때도 있었지만, 자신의 기준에 옳다고 생각되지 않으면 자신이 속한 정당과 선배 정치인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다양한 방송에서 ‘소신 있게 할 말 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쌓았다. 정치인 이준석의 철학에 동의하는 것과 별개로 그가 소신껏 할 말을 해온 사람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으리라 확신한다.

오른쪽 날개는 ‘보수의 집권을 열망하는 당원들의 전략적 선택’이다. 대안은 없었다. 이준석 대표는 후보 시절 나이와 경험을 이유로 많은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대선 국면 속 안정적 관리자의 역할을 강조한 나경원·주호영 후보의 전략은 처음에만 유효했다. 이준석 대표는 주호영 전 대표의 공격에 ‘팔공산’으로 받아쳤고, 나경원 전 대표의 공격에 ‘전기차’로 받아쳤다.

나경원·주호영 전 대표가 간과한 것이 있다. 이준석 대표는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당원들에게 아주 오랜만에 승리의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줬다. 나경원·주호영 전 대표가 원내대표 시절에 아쉬운 리더십을 보여준 것과 차별되는 성과가 이준석 대표에겐 있었다.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유능한 선수로 보였던 것이다. 결국 이준석 대표의 탄생은 ‘변화’를 기반으로 세대교체와 보수 집권을 바라는 열망이 한데 모인 결과다.

국민의힘에 불어온 ‘이준석 돌풍’은 민주당에 아주 무겁고도 아픈 질문을 던졌다. ‘민주당에는 왜 이준석이 없는가?’ ‘민주당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개인적으로 정치인 이준석의 ‘갈라치기’ 정치에는 동의할 수 없고 혐오와 갈등을 양분으로 삼아 지지세를 결집하는 과거 정치 행보에도 동의할 수 없다. 다만 이준석이 주장하는 내용과 별개로 소신 있는 자세와 이슈를 선점하고 국민과 긴밀하게 소통하는 감각의 측면에서 ‘민주당에는 왜 이준석이 없냐’는 질문에 답해보자.

우선, 민주당은 경직됐다. 낙인찍기와 편가르기가 꼭 해야 할 말을 못하게 한다.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의 분열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다시는 분열해선 안 된다는 강한 의지가 의석수 180석을 얻은 뒤 형성된 공통의 정서였음을 기억한다. 당에 꼭 필요한 소신 발언과 정치 현안에 대한 논쟁을 하고 싶은 이들이 왜 없었겠는가. 다만 ‘혼자 튀고 싶어 그러는 것 아니냐’는 당 안팎의 비판과, 강조되는 원팀 정신 앞에 점차 사라졌다.

민주당은 당내 민주주의를 서둘러 회복하고 치열하고 유능하게 혁신해가야 한다. 집권여당을 바라보는 국민의 평가 기준은 명확하다. 결국 유능한 정책과 오만하지 않은 태도에 있다. 세대교체와 정치 혁신의 열망이 들끓는 상황에서 아무런 변화도 이뤄내지 않는다면 결국 도태될 것이다.

물리적 조건 비슷한 것으로는 안 된다

청년정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다만 왜 우리 당엔 ‘청년’이 없냐며 반짝하는 스타를 들여오거나 이슈메이킹에만 집착하는 ‘인스턴트식 청년정치’를 조장하는 것은 이제 민주당뿐만 아니라 정치권 전반에서 그만둬야 한다. 당내 시스템과 체계를 정비하고 굳세게 닫힌 민주당의 문을 활짝 개방할 때다. 이준석 대표의 돌풍에 ‘민주당엔 왜 이준석이 없냐’고 물으며 ‘이준석’의 물리적 조건과 비슷한 누군가를 세우는 것은 얄팍한 수다. 내로남불과 위선을 뿌리 뽑고, 재선인지 3선인지를 따지며 선수 앞에 가로막혀 할 말을 못하게 하는 문화는 이제 사라져야 할 낡은 관행이다.

민주당의 가치를 되찾자. 민주당의 절박함을 되찾자. 권력 획득이 목적이 되는 게 아니라, 권력으로 어떤 사회를 이뤄내려 하는지 다시금 명확하게 보여줘야 할 때다.

박성민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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