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박정희 대 박근혜

등록 2013-11-23 16:01 수정 2020-05-03 04:27
<ahref href="mailto:morgen@hani.co.kr">morgen@hani.co.kr">



머지않아 또 한 해가 저문다. 새 정부 들어 첫해다. 박근혜 정부의 집권 첫해를 상징하는 단어는 단연 ‘과거’인 듯싶다. ‘미래’창조과학부라는 이름의 조직을 탄생시킨 정부 시절 일이다. 핵심 요직은 한 치의 예외 없이 과거본색으로 충만한 인사들이 꿰찼다. 인사 파동의 와중에 그 자리를 넘겨받은 후임자들의 면면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다보니, 새 정부가 내놓는 정책들도 철 지난 레퍼토리로 넘쳐난다. 초조함에 꺼내든 카드가 공안몰이식 공포정치인 것도,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이를 두고 가장 흔한 비판이 ‘유신시대의 부활’ ‘유신으로의 회귀’다. 아버지(박정희)의 복사판 또는 재림(?) 정도로 딸을 바라보는 시각이 대표적이다. 어디까지나 주어는 ‘죽은’ 박정희고, ‘살아 있는’ 박근혜는 그 대리인일 뿐이라는 식이다. 최근 들어 더욱 뚜렷해지고 있는 박정희 신격화 움직임이 그 명백한 증거인 양 등장하기도 한다. 이미 ‘반신반인’의 경지에까지 올려놓은 마당이니.
하지만 박근혜 정부를 단순히 유신과 등치시키는 이런 의식구조는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을 되레 과소평가하고 왜곡하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무척 높다. 박근혜 정부는 단지 유신의 부활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은 형태로) 더욱 ‘진화’한 판본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단순한 과거 회귀가 아니라 일종의 변종이며, 우리는 아버지를 ‘뛰어넘은’ 딸의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 정부가 더욱 정교한 통치술로 무장했다거나 미디어 환경이 녹록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21세기 사회의 갈등 구조는 과거 유신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층적이고 복합적이다. 그간 학교나 일터가 주로 담당해왔던 사회화 기능이 사실상 사라져버린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이제 학교나 일터는 ‘개발독재’ 시대에 그랬듯 ‘누구나 들어가 한데 융합될 수 있는 백지 공간’이 더 이상 아니다. 이미 그어진 구분선을 사후적으로 확인하는 처절한 무대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지 ‘흘러간’ 유신을 저주하는 것만으로 새로운 ‘저항’의 동력은 생겨나기 힘들다. 하물며 유신을 제대로 경험조차 하지 못한 인구가 절반을 넘음에랴.
더 이상 겉으로 드러난 구닥다리 통치 행태에만 무작정 매달릴 일은 아니라고 본다. 진정 중요한 건, 박정희조차 훌쩍 뛰어넘은 박근혜 시대의 균열 지점은 과연 어디일까를 냉철하게 짚어보려는 노력이 아닐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비록 독재와 철권통치로 얼룩졌을지언정, 누가 뭐래도, 박정희 시대는 ‘성장’의 시대였다. 독재자는 성장의 과실을 고루 나눠가지려는 욕구를 무자비하게 짓눌렀으나, 그 시대를 살았던 그 누구도 우리의 삶 자체가 ‘팽창’하리라는 데 의구심을 갖지는 않았다. 저항과 분노가 단숨에 끓어올랐던 이유도, 그 저항과 분노를 때로는 폭압으로 때로는 적당한 당근으로 관리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에 비하면, 박근혜의 시대는 한마디로 ‘다운사이징’의 시대다. 과연 박근혜 정부가 주도하는 ‘민주주의의 다운사이징’은 분노와 저항의 에너지조차 깊숙이 묻어버린 것만 같은 다운사이징 시대에 그들에게 최종 승리를 안겨줄 무기일 수 있을까?

</ahref>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