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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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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너의 아파트

등록 2013-08-27 14:01 수정 2020-05-03 04:27

어쩌다보니 이번호엔 유독 집, 정확히는 아파트 이야기가 넘치게 됐다. 여름마다 냇가에서 가재가 끓었고 맑은 물이 모래 밑으로 스며들어 ‘모래내’라고도 불리던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과 남가좌동 일대엔 언젠가부터 뉴타운 바람이 불어닥쳤다. 누군가에겐 오랜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희망의 터전이기도 할 그곳은 ‘철거왕’이라 불린 한 인물에겐 또 다른 기회의 땅이기도 했다. 3주 전 973호에서 ‘철거왕 이금열’이라는 표지이야기를 소개한 이후, 은 후속 취재를 통해 몇 가지 사실을 추가로 단독 확인할 수 있었다. 재건축과 재개발, 철거 사업을 벌이는 와중에 온갖 비리와 불법행위에 연관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다원그룹의 실질적 지배자 이금열 회장을 상대로 한 수사를 무마하려 나섰던 전직 경찰서장이 퇴임 뒤 몸담은 곳은 바로 다원그룹 계열사 중 한 곳이었다. ‘가재울 드라마’의 시작이다.
달리 보면, 가재울 드라마를 포함해 최근 이 몇 차례 다룬 다원그룹 관련 기사는 단지 국내 철거업계의 상징적 인물로 통하는 이금열이란 한 개인의 인생 역정을 훌쩍 넘어서는 서사극일지 모른다. 그 줄거리의 주된 뼈대는 부동산 광풍과 그에 젖줄을 댄 토건자본주의의 압축적 성장으로 점철된 1990년대 이후 한국 자본주의의 축적 과정과 잇닿아 있다. 오랜 삶터를 무참히 허물고 그 자리에 검붉은 시멘트를 쏟아부어 건물을 올리는 과정엔, 으레 부동산 정책이란 명분 아래 돈을 풀어 게임의 판돈을 키우는 장면도 빠지지 않았다. 비리와 불법, 유착과 결탁이 자연스레 끼어든 건 물론이다.
이번호에 실린 또 하나의 아파트 이야기도 실상 그 뿌리는 같은 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게다. 하늘 모르고 치솟는 전셋값 탓에 곳곳에서 아우성이다. 각자의 처지에 따라 그 강도는 다소 차이가 날지 모를지언정, 한 개인으로만 놓고 보면 세입자나 집주인이나 전세 대란으로 인해 고통스럽긴 마찬가지다. 쉽사리 헤어날 수 없는 부동산 광풍의 깊은 늪에 모두가 빠져버린 까닭이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는 당신이 어느 곳에 살고 있는가를 통해서만 가장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세상에서 집단 탈출을 감행하지 않는 한.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예의 그 뻔한 ‘부동산 대책’ 카드를 다시금 꺼내들 태세다. 전세 수요를 매매 수요로 돌려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를 없애자는 게, 또다시 등장하는 레퍼토리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최근 심심찮게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는 신흥시장 자금 탈출 시나리오란 것도 결국 돈을 무한정 풀어 인위적으로 경기를 지탱하던 국면으로부터의 이탈 혹은 전환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산물이다. 모든 ‘위기’ 국면이란 사실 여지껏 힘을 발휘하던 주된 흐름의 방향이 일거에 바뀌는 시점에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간 한쪽 방향으로 이끌던 힘이 더 이상 작용하지 못하는 임계치에 이르는 순간이 곧 우리가 느끼는 위기의 시발점이다. 위기란 다른 한편으론 늘 ‘안정적 불균형’에서 ‘불안정한 균형’으로 돌아서는 자연스러운 과정이기도 한 이유다. 얼핏 보아 안정적이되 내적으로는 극히 불균형한 삶에 계속 매달릴지, 아니면 당장은 불안정하되 결국엔 균형을 찾는 정공법을 받아들일지, 선택은 결국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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