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머리로만 치르지 못한다. 두뇌와 장기, 손발이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이긴다. 대동맥부터 모세혈관까지, 피가 돌지 않는 조직은 괴사한다. 정당의 손발인, 일상적으로 유권자와 접촉하고 이들의 사회·경제적 요구를 중앙당 차원의 것으로 끌어올려야 할 밑바닥 조직은 저절로, 바람으로, 당위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민주통합당은 머리도, 손발도 모두 졌다.
은 그중 상징적인 지역 한 곳을 찾아 돋보기를 들이대기로 했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은 당의 현역 의원이 있는 3곳(청주 흥덕갑·을, 청원)을 포함해 충청북도 8개 지역에서 모두 패배했다. 그중에서도 충북 청주 흥덕을 지역은 공단이 밀집해 있어야권 성향이 강한 곳이다. 유권자도 젊은 층이 상대적으로 많다.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전 후보 비서실장을 지낸 노영민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4·11 총선에서 3선에 성공했다. 총선에서 노 의원은 53%, 김준환 새누리당 당협위원장은 42%를 얻었다. 약 8600표의 차이가 났다. 반면 대선 개표 결과는 갑·을 지역을 합산해 51% 대 49%였다. 표차는 5천표 정도다. 흥덕을 지역만 보면 새누리당은 대략 13%포인트를 따라잡은 셈이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중앙당 차원의 전략적 오류와 후보 변수를 논외로 한다면, 정당의 팔과 다리 노릇을 해야 할 기층 조직의 붕괴가 민주당으로선 뼈아프다. 당원 수로 봐도 민주당이 5700명, 새누리당은 4500명 수준이라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현역 국회의원이 갖는 조직적 프리미엄을 제대로 흡수하지도 못했다. 노영민 의원 사무실의 이상식 사무국장은 “흥덕을 지역에서만 보면 민주당 조직이 양적으로 앞서는 것은 사실이다. 당원들도 상대적으로 젊고 역동적이었다”면서도 “그것은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었다. 노년층이 두꺼운 새누리당에 비해 우리는 노년층 표심에 제대로 호소하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양쪽의 모든 역량이 전면적으로 격돌하는 대선에서 보수가 내세운 이미지와 논리는 강력했다. 이 사무국장은 “최근 지역 당협의 사무국장들이 모여 워크숍을 했는데 새누리당이 내세운 ‘빨갱이’ ‘퍼주기’ 등의 이야기는 유권자에게 쉽게 다가간 반면 우리가 이야기하는 ‘보편복지’는 설명 자체가 참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 말했다.
중앙당 차원에서 내려온, 정권 교체의 당위성을 중심에 둔 선거 전략도 결과적으로는 패착이었다. 그는 “후보 단일화와 투표율 프레임에 매몰됐던 게 사실”이라며 “지역에서도 당연히 정권교체론과 투표독려운동 등 바람에 의존했다”고 말했다. 지역에서 정당의 조직은 주로 당원협의회 간부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진다. 이 사무국장은 “예전처럼 당성이나 정치성이 곧 조직이 되는 전통적 상황은 와해됐다고 봐야 한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옛날과 같은 세밀한 조직화는 쉽지 않더군요. 결국 인간관계에 의존하는 측면이 큽니다. 새누리당이 우리보다 나은 것은 보수적인 분들이 많이 활동하는 지역의 직능단체를 꽉 잡고 있다는 점이에요. 나태했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가 반성해야겠지요.”
젊은 층 표심 허무는 작업 집중새누리당 쪽의 승리 요인 분석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새누리당 김준환 당협위원장은 굵직한 단체만 추려도 13개 단체에서 직함을 갖고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소그룹 행사나 직능단체 모임, 동호회나 산악회 등 행사는 꼭 챙긴다”며 “지역 유권자에게서 민원이 들어올 경우 현업이 변호사다 보니 법률적인 부분은 들어주려 노력하고 정책적인 부분은 도당이나 중앙당에 건의하고 있다”고 했다.
30~40대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이끌어내는 데 주력한 민주당과 달리, 새누리당 조직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젊은 층의 표심을 허무는 작업에 집중했다. 2008년부터 김준환 위원장을 돕고 있다는 천문자 사무국장은 “50~60대 유권자는 어차피 보수층이 많지 않느냐”며 “한정된 자원으로 젊은 층을 공략하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천 사무국장이 주목한 것은 학부모 모임이었다고 한다. 그는 지역의 어머니연합회장을 지냈고, 충북 학교운영협의회 초등학교 이사다. 한 초등학교에선 학교운영위원회 활동도 하고 있다. “충북 지역 전체를 보면 초·중·고등학교가 600개는 될 거예요. 청주 시내에만 120개 학교가 있어요. 그 학부모들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규모예요. 제가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초등학교만 봐도 그래요. 초등학생 부모면 대체로 젊은 분들이잖아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것을 통해 이들이 자신이 아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새누리당은 투표 참관인도 젊은 층으로만 뽑았다. 천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지역에 46개 투표소가 있어요. 오전과 오후로 나눠보면 새누리당에서만 모두 92명의 참관인이 필요해요. 우리는 대부분 30대로만 했어요. 이들의 배우자까지 생각하면 벌써 200표쯤 되잖아요. 미리 뽑아놓고 계속 관리했어요. 문자메시지도 보내고요. 선관위쪽에서도 놀라더군요. 그동안 투표 참관인들을 보면 민주당은 주로 젊고 새누리당은 노인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새누리당이 더 젊더라고요.”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한 피라미드 구조의 네트워크는 강력하게 작동했다. 당직자들을 제외하고 새누리당 당협이 일상적인 조직 활동을 통해 구축한 열성 지지자 그룹은 약 30명 정도라고 했다. 천 사무국장은 “그중 절반은 당원이고 절반은 당원이 아니다”라며 “이분들은 유세 현장에도 매일 나왔고 각자 수십 명에서 100명 이상씩 자신이 아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리고 문자를 보내는 등 홍보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고 했다. 당협 차원에서도 이들에게 특별히 공을 들였다. “공보물이 나오면 이분들에게 먼저 보내 내용을 습득할 수 있도록 했어요. 박근혜는 누구인가, 박근혜는 왜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주위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한 열성 지지자가 200명 마음 움직여”그 ‘열성적인 지지자’ 중 한 명을 만났다. 청주 흥덕구 봉명동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윤병기(60)씨다. 여성인 천 사무국장은 그를 ‘오빠’ 혹은 ‘오라버니’라고 불렀다. 윤씨는 원래 새누리당을 지지했지만 별다른 정치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의 인연은 천사무국장이 2년 전 손님으로 횟집을 찾으며 시작됐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오라버니가 정말 내 스타일이었어요. 대선을 앞두고 도와달라고 애원했지요.” 이 지역에서 새누리당은 야당이다. 중앙당의 지원이나 당협의 규모에서도 민주당에 밀렸다. 상대 진영보다 부지런해야 했다. 천 사무국장은 “저쪽(민주당)이 아침 8시부터 시작하면 우리는 6시30분에 모여 7시에는 움직였다”고 설명했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윤씨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유세 현장을 찾았다. 운동원들과 함께 율동도 하고, 거리를 지나가는 유권자에게 홍보물도 나눠줬다. “내 평생 그렇게 일찍 일어났던 게 처음이오. 장사 마치고 소주 한잔하고 그러면 항상 퇴근이 늦었으니까. 그래도 하루 일어나고 또 다음날 일어나고 하니까 되더라고. 집사람도 놀랐지. 그렇게 해본 역사가 없는데 말이오. 그래도 힘들거나 생업에 차질이 생기지는 않았어요. 새벽부터 아침 9시까지 원래 자고 있을 시간에 한 일이니까. 나는 정치를 배운적도 없고, 해본 일도 없어요. 이번에는 무조건 박근혜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도운 것뿐이지요.”
윤씨는 눈이 오는 날에는 먼저 유세장에 나가 눈을 쓸었고, 비가 오는 날에는 가게 손님들이 두고 간 우산을 모아서 가져갔다. 유세 현장만 지원한 게 아니었다. “주변에 공단이 있어서 손님의 90% 정도는 공단 사람들이지요. 그중에 90%는 문재인 지지자더라고. 물론 손님들이니까 표를 내면 안 되겠죠. 민주당 좋아한다고 손님과 싸울 수는 없지 않소. 그래도 박근혜를 칭찬하거나 찍어야 한다고 말하는 손님한테는 슬쩍 가서 술한 병씩 주고 서비스 안주도 주고 그랬어요. ‘아이고, 참 듣기 좋습니다’라고 거들기도 하고요.”
천 사무국장은 “표로 계산하기는 어렵지만 윤 사장님이라면 대략 200명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이런 분들이 곧 당의 자산이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이런 자산을 정말 많이 얻었다”고 했다. 윤씨 같은 적극적인 지지자가 30명이면, 거친 계산이지만 6천 표가 나온다. 전체 유권자가 약 16만 명인 흥덕을 지역에서 보면 적지 않은 수다.
윤씨의 ‘조직화 작업’은 일상적인 생활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손님이 많이 오가는 횟집의 텔레비전은 하루 종일 보수적인 종편 뉴스 채널에 고정돼 있었다. 가족도 설득했다. “아들이 서른셋인데, 생각이 많이 달랐어요.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아들은 문재인을 지지했는데 아버지가 박근혜라고 말하니까 ‘알았어요’ 하고 말더라고. 지금도 문재인을 찍었는지, 박근혜를 찍었는지 모르겠어요. 4월에 결혼하는데, 며느리 될 아이는 결국 설득이 안 됐어요. 시아버지 될 사람이 이야기를 해도 ‘도저히 안 되겠다’고 그러대요, 허허. 이번 대선에는 가족 사이에 언성도 높이고 그랬지요.” 그는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에 당비를 내는 책임당원에도 가입했다. 그리고 흥덕을 지역에서 대선 승리에 기여한 당원 중 10명에게만 주는 중 앙당의 표창장도 받았다. 윤씨는 “지금도 뉴스에서 박근혜 얼굴이 나오면 그렇게 흐뭇할 수 없다. 생각 같아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정말 힘있게 일할 수 있도록 다음 총선에서 새누리당 의석을 한 80% 정도는 만들어주고 싶다”고 했다.
일상화된 ‘골목정치’의 메커니즘은 단지 특정 지역에서만 두드러지는 현상이 아니다. 각 지역에서 기존 양당 구조와 별도로 다양한 생활정치 시도를 해온 진보정당과 시민운동의 흐름은 사실상 와해된 상황이나 마찬가지다. 각 계파가 엉성한 형태로 결집해 있는 민주당의 기층 조직은 유명무실했다.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야권 연대의 첫 번째 모델을 성사시켜 주목받았던 고양무지개연대의 이춘열 전 집행위원장은 “일상적 조직망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차이는 엄청나다”고 지적한다. “새누리당의 공식적인 조직도 지리멸렬하기는 마찬가지죠. 엄청나게 튼튼하거나 한 것은 아니에요. 다만 당의 하부 조직원들이 갖고 있는 개인적 관계망의 양과 질이 다르다고 봐요. 그렇게 일상적으로 직간접적인 이익을 주고받으며, 그냥 살아가는 겁니다. 평소에는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나 다 욕하더라도, 선거 때는 그 네트워크를 통해 결집하게 되지요. 그 작업이 여당에 비해 야권은 정말 부족해요. 정권 교체의 대의명분으로는 설득이 안 되는 부분이에요.”
대안은 뭘까. 전문가들은 “민주당이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춘열 전 위원장은 “주민들 속으로 정치가 어떻게 깊게 파고들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할 때 이쪽의 모델은 보수정치의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며 “주민자치 활성화나 작은 공동체 모임을 통한 이른바 공동체 경제의 모델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적 취약 계층과의 광범위한 관계망 확대가 우리가 추구해야할 풀뿌리 모델이 아니겠느냐. 그것이 이뤄지지 않는 한 일상적으로는 새누리당에 계속 밀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우석훈 성공회대 교수도 대선 이후 발표한 글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시민이라고 부르고, 그렇게 정체성을 느끼는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시민의 정부가 온다. 그리고 그게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라고 썼다.
정당의 기본에서 다시 시작해야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교수는 “이번 대선이 민주당에 남긴 중요한 시그널은 ‘한 방’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점”이라며 이렇게 분석했다. “유권자 지형이 이미 많이 변했고, 앞으로 더 변해갈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지역 조직의 복원일 텐데, 그만큼 발품이 많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도 없어요. 그건 기본적으로 면 대 면으로 이뤄져요. 민주당은 너무 오랫동안 이 작업에서 손을 놓고 있었어요. 효율이 낮고 가시적인 성과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이건 정당의 기본입니다. 현재 갖고 있는 자산을 냉철하게 판단하고 바닥에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청주=송호균 기자">uknow@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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