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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간판스타가 되어주오

영입 쟁탈전으로 불붙는 이적 시장을 보며 19세기 메이저리그에서 시작되고 1998년 한국에 도입된 FA의 역사를 돌이켜보다
등록 2011-12-01 15:34 수정 2020-05-03 04:26
<머니볼>

<머니볼>

‘프리에이전트’(Free Agent). 프로스포츠에서 구단의 독점계약권에 묶이지 않고 자유로이 구단을 선택할 수 있는 선수를 가리키는 용어다.

프로스포츠는 독특한 산업이다. 이 산업의 ‘신입사원’들은 자유롭게 직장을 선택하지 못한다. 프로야구의 경우 9개 구단은 드래프트, 즉 신인 지명을 통해 매년 새로운 노동자를 받는다. 선수에게는 선택권이 없고, 구단에는 있다. 한 번 정해진 직장은 9년을 제대로 뛰기 전까지 바꿀 수 없다. 오직 구단만이 선수 계약을 양도(트레이드)할 수 있다. 헌법 15조의 직업 선택의 자유가 제한되는 셈이다. 일정 조건을 충족하고 9년이 지나야만 프로야구 선수는 FA 자격을 얻는다.

구단에는 달갑지 않은 제도

처음에는 이렇지 않았다. 미국에서 프로야구가 처음 생긴 때는 19세기 후반. 처음에는 모든 선수가 FA였다. 구단은 시즌 단위로 선수와 계약한다. 경기가 열리지 않는 비시즌에는 급여를 지급할 의무가 없었다. 이는 오늘날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선수 연봉이 1년이 아닌 10개월로 나뉘어 지급되는 흔적으로 남아 있다. 다음 시즌에 선수는 어떤 팀이든 선택할 수 있었다.

이러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프로야구는 점차 흥행산업이 돼갔다. 흥행에서 중요한 건 예나 지금이나 스타다. 스타 선수를 영입하려고 매년 타 구단과 경쟁하는 건 구단 처지에서 달갑지 않았다. 이 시스템에서 ‘내년을 내다보는 팀 운영’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선수 처지에서도 직업 안정성이 떨어졌다. 그래서 1879년 내셔널리그(National League)에서는 ‘보류권 조항’(Reserve Clause)이라는 게 만들어졌다. 보류선수(리저브)로 지정된 선수에 대해 구단은 다음 연도의 독점 계약권을 가진다. 그리고 이 ‘다음 연도’는 무한 반복된다. ‘직업 선택의 자유’ 측면에서 이때부터 선수는 구단의 ‘노예’가 됐다. 1879년 구단당 보류선수 수는 11명이었지만 이후 40명까지 늘어났다. SK에서 뛴 정대현은 올 시즌 뒤 볼티모어 오리올스로부터 ‘메이저리그 계약’을 제안받았다. 메이저리그 계약이란 ‘메이저리거’ 신분인 40명의 로스터 안에 반드시 포함되는 계약 형태다. 40명 로스터의 다른 이름이 바로 ‘리저브 리스트’(Reserve List)다. 한국 프로야구 규약에선 이를 ‘보류선수 명단’으로 번역한다.

보류권 조항은 구단 처지에서 프로야구를 번창하게 하는 황금 열쇠였다. 독점계약권을 쥔 구단은 선수 연봉 인상 요구를 다 받아줄 이유가 없었다. 전설적인 홈런왕 베이브 루스는 1930년 역대 최고 연봉인 8만달러를 받았다. 루스 이후 최고의 타자로 꼽히는 테드 윌리엄스의 생애 최고 연봉은 1959년의 12만5천달러였다.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30년 가까이 메이저리그 최고 연봉은 뒷걸음질쳤던 셈이다.

선수들은 반란을 일으켰다. 1974년 시즌 뒤 메이저리그 선수노조는 사무총장 마빈 밀러의 지휘 아래 구단들로부터 FA 제도를 따내는 데 성공한다. 결과는 급격한 연봉 인상이었다. 1977년 메이저리그 연봉 총액 1위는 필라델피아의 297만달러였다. 10년 뒤인 1987년에는 뉴욕 양키스가 1857만달러를 썼다. 그 10년 뒤인 1997년 양키스의 연봉 총액은 7339만달러로 4배 늘었다. 2007년엔 1억9523만달러였다. 구단에는 FA가 전혀 달갑지 않은 제도라는 게 숫자로 나타난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FA 제도는 1998년 12월29일 이사회 결의로 처음 도입됐다. 1998년이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의 한가운데다. 지금의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같은 선수 조직도 없던 때였다. 구단들은 왜 하필 긴축이 필요한 시기에 FA 제도를 도입해 프로야구를 고비용 구조로 만들었을까.

답은 ‘임선동’이라는 이름에 있다. 연세대 투수 임선동은 1995년 LG 트윈스의 지명을 거부하고 일본 프로야구 다이에 호크스에 입단했다. 제도상 하자 없는 계약이었지만, LG 구단과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일본 프로야구를 압박해 다이에와의 계약을 무산시켰다. 이에 임선동은 LG의 지명권이 무효임을 주장하며 소송에 들어갔다. 이듬해 서울지방법원은 “LG는 임선동에 대해 보류권을 행사할 이유가 없다”며 임선동 손을 들어줬다. 이 소송은 지명제도, 나아가 보류권 자체를 흔드는 중대한 의미가 있었다. 이상일 KBO 사무총장은 뒷날 “임선동 때문에 FA 제도를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술회했다.

올해 판돈 커진 한국 야구의 FA 시장

1999년 시즌 뒤부터 시행된 프로야구 FA 제도는 한동안 스타 선수들에게 종전과 비교할 수 없는 부를 안겨줬다. 2000년 연봉 1억4천만원이던 해태 홍현우는 시즌 뒤 FA로 LG에 입단했다. 계약 조건은 4년 18억원. 연평균으로 따지면 221% 인상된 금액이었다. FA 연봉 인플레는 2004년 시즌 뒤 삼성이 심정수를 4년 최대 60억원에 영입하며 정점에 이르렀다.

심정수 이후 6년 동안 FA 시세는 제자리걸음을 했다. 늘어나는 지출에 부담을 느낀 구단들은 FA 보상 규정 강화, 계약금 지급 금지 결의 등 사실상의 담합을 했다. FA 자격 취득까지 9년이 걸리는 현행 제도 아래서는 전성기의 스타가 FA 시장에 나오기 어렵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반전이 일어났다. 11년 동안 롯데 자이언츠에서 뛴 이대호는 구단에서 4년 100억원을 제시받았다. 장병수 구단 대표는 “비합리적인 금액이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늘 선수를 빼앗기기만 하던 넥센 히어로즈는 외야수 이택근을 4년 50억원에 영입했다. 이택근과 비슷한 성적인 LG 박용택이 그 1년 전에 맺은 4년 FA 계약 총액은 34억원이었다. 6년 동안 구단이 이겼지만, 올해는 선수가 이겼다. 내년에는? 신나게 돈을 쓴 구단들은 이제 ‘자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낸다. 내년에도 선수 쪽이 웃을 수 있을까.

최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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