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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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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과 맞담배 피는 선수를 아시나요

‘축구여행가’의 이탈리아 세리에A 관전평…
테러 같은 연막탄과 욕설, 사고 방지 위해 실명제 입장권·소지품 검사도
등록 2009-04-02 10:55 수정 2020-05-03 04:25

나는 ‘축구여행가’다. 이상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자비로 세계를 돌며 축구 경기를 보러 다니는 나를 딱히 정의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 지금은 세리에A를 보기 위해 이탈리아 밀란에 와 있지만 두 달 전에는 첼시 공식 홈페이지 한국판 일을 하며 영국에서 프리미어리그를 관찰했다. 그건 돈보다는 경험을 우선시한 선택이었다. 덕분에 짧은 기간이지만 첼시에 슬쩍 끼어들어 구단의 구성이나 마케팅 따위를 좀더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6개월간 나름 영국 바닥을 굴렀다고 생각한 나는 이탈리아로 방향을 틀었다. 이탈리아 축구 전문 사이트인 ‘골닷컴’의 한국어판 편집장을 지냈던 터라 평소 이탈리아 축구에 관심이 높았고, 베컴의 이적과 더불어 취재거리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냐고? 영국과는 또 다른 이탈리아 축구만의 매력에 그야말로 흠뻑 젖어들었다. 고유한 역사를 가진 도시들을 발견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도 즐기고 있다.

이 칼럼을 통해 그동안 머물렀던 유럽·아프리카·아시아·아메리카·중동의 축구를 경험한 얘기를 풀어놓을까 한다. 몸소 겪은 일들이라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여전히 생생한 느낌이다. 독자들도 함께 공유할 수 있길 바란다. 먼저 이탈리아 얘기다.

한 연고지에 앙숙 관계 두 팀이 동거

이탈리아에서는 각 도시마다 두 팀이 같은 경기장을 쓰고 있다. 예컨대 밀란을 연고지로 둔 AC밀란과 인테르밀란은 산시로 경기장을 사용하며, 로마에서는 AS로마와 라치오가 올림피코 스타디움을 공유한다. 잉글랜드 리그의 첼시, 아스널, 토트넘 등의 팀들이 모두 전용구장을 쓰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렇듯 경기장을 함께 이용하는 두 팀은 대개 실력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앙숙 관계라서 나로선 조금 의아한 생각도 들었지만, 선수들이나 팬들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구단 문제와 합리적인 구장 운용은 별개라는 것. 정작 곤혹스러운 당사자는 스폰서들이었다. 양 팀의 스폰서가 제각각이라 한 경기가 끝나면 스폰서 간판과 엠블럼 등을 전부 교체해야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경기장 안 기자석에서 언론담당관이 담배를 꺼내 무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전세계의 거의 모든 경기장이 금연 지역으로 지정된 것과는 딴판이다. 이탈리아 팬들은 독일이나 영국 팬들처럼 맥주를 덜 마시는 대신, 알코올이 첨가된 커피를 새침하게 들이켠다. 놀랍게도 세리에A의 대다수 선수들이 애연가로 통한다. 지난 1월 두바이에서 AC밀란의 동계 훈련을 취재할 당시 나는 폐활량이 많이 필요한 포지션의 선수가 줄담배를 태우는 걸 보고 화들짝 놀란 적이 있다. 그 선수가 담배를 피웠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안첼로티 감독 앞에서 태연자약하게 흡연을 하는 모습 때문에 놀라움이 더욱 컸다. 우리나라 같으면 스포츠 뉴스의 가십으로 다뤄질 만한 ‘사건’이지만 커피랑 담배를 지독하게 사랑하는 이탈리아 국민들은 축구와 이 둘을 떼놓을 생각이 별로 없는 듯하다.

이탈리아 입장권에는 티켓 구매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 관중은 경기 당일에 신분증을 지참하지 않으면 경기장에 들어갈 수 없다. 2007년 경기 도중 발생한 사망 사건이 발단이 돼 도입된 이 제도는 입장권과 신분증의 이름을 대조하는 것은 물론, 소지품까지 일일이 검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원정을 온 응원단과 홈 관중 사이의 갈등을 사전에 막는 조처도 이뤄진다. 밀란에서 AC밀란과 제노바의 경기가 벌어질 경우, 밀란에 거주자로 등록된 사람만 입장권을 살 수 있다. 두 팀의 팬들이 함께 경기를 관람하더라도 두 그룹은 철조망으로 철저하게 격리된다. 경기가 끝나면 홈 관중이 모두 빠져나간 뒤에야 원정 응원단의 출입구를 열어준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원정대의 과격한 행동에서 홈 관중을 보호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세리에A 예전 영광을 되찾을까

다른 나라에서 온 기자들은 세리에A 리그가 벌어지는 경기장에서 종종 테러 같은 순간을 경험하곤 한다. 무슨 뜻이냐면 관중이 응원 도중 흥분해 연막탄을 터뜨리는 소리에 순진한(?) 기자들이 놀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선 흔한 광경이다. 관중석 여기저기서 깃발이 나부끼며 응원전이 펼쳐지는데, 이때 팬들이 합창하는 노래는 상호비방전의 성격을 띤 응원가다. 이들은 심지어 심판에게 욕을 퍼붓기도 하는데, “심판, 당신의 아내는 다른 남자와 자고 있어요” “당신의 누나는 나 때문에 더 이상 처녀가 아니에요” 따위의 저급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말 많고 탈 많긴 하지만 사실 세리에A는 한때 선수들이 선망하는 최고의 축구리그였다. 마라도나에서 지단까지 세리에A를 통과해 몸값을 휘날리며 활약한 이들이 부지기수였던 것이다. 하지만 심판 매수와 폭력 사건을 비롯한 각종 스캔들이 리그의 질을 저하시켰고, 막강한 자금력을 동원한 영국의 프리미어리그에 위협받기 시작했다. 세리에A는 최근 이런 현실에 대한 축구계 인사들의 각성과 노력이 이뤄지면서 다시금 활기를 띠고 있다. 모리뉴와 베컴의 영입, 카카의 잔류 등도 세리에A 붐을 부추기고 있으며, 프리미어리그보다 상위팀과 하위팀 간 실력차가 크지 않아 승부에 대한 긴장감을 더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자랑거리다. 아직 과거의 부활을 기대하기엔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세리에A가 예전과 같은 영광을 누리기를 ‘밀라네제’(밀란에 사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가 된 나는 기다리고 있다.

서민지 축구여행가 thisisminji@hotmail.com

*서민지씨는 3주에 한 번씩 세계 축구 탐방기를 연재합니다.[한겨레 주요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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