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은 여러 면에서 이명박(MB) 정부를 닮았다. 우선 경제 환경이 비슷하다. 외부에서 발생한 위기가 고물가·고환율로 이어졌다. 친시장·친기업, 감세로 대표되는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것도 판박이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청와대 대통령실장), 한덕수 국무총리(주미대사), 추경호 경제부총리(청와대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겸 비상경제상황실장) 등은 MB 정부(괄호 안은 과거 MB 정부에서 근무했던 직책)에서도 중용했던 인사들이다.
그러나 물가정책의 초점은 과거와 다르다고 윤석열 정부는 강조한다. 이른바 ‘시장친화적 물가 대책’이다. MB 정부의 물가정책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 이른바 ‘MB물가지수’였다. 쌀·라면·소주 등 52개 품목을 정해 정부 주도로 가격을 관리(통제)했다.
2022년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지금까지 크게 3차례 물가 대책을 내놨다. 출범 직후 편성한 추가경정예산엔 3조8천억원 규모의 서민·취약계층 지원 방안을 담았다.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던 코로나19 자영업자 손실 보상 예산 약 24조원을 편성하며 기존 서민 지원을 일부 확대했다.
‘긴급 민생 안정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물가 대책은 5월 말 발표했다. 핵심은 수입품이 국내에 들어올 때 붙이는 관세, 부가가치세 감면을 통한 생필품 가격 인하다. 과거처럼 정부가 시장가격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세금을 써서 물건값을 일부 낮춰주겠다는 거다. 대책에 ‘시장친화적 물가 관리’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다.
이 정책들은 대부분 2022년 7월부터 시행한다. 문제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다. 윤인대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 국장은 “9∼10월이 되면 이번 대책의 효과가 전면적으로 나타난다”며 “물가 상승률이 0.1%포인트 낮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2022년 말까지 6개월간 관세 1200억원 이상을 깎아주고도 물가를 찔끔 낮추는 효과밖에 없는 것이다.
6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과 견줘 6% 올랐다. 7∼8월엔 물가 상승폭이 7∼8%대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전기·가스료 등 공공요금이 오르고, 여름휴가철과 이른 추석을 앞두고 소비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정부 대책 효과는 물건값이 한 달 새 100원 오를 때 구매 가격을 1원 정도 낮추는 수준에 불과하다. 사실상 소비자가 그 영향을 체감하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는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 구매자에게 부과하는 유류세 인하폭도 7월1일부터 기존 30%에서 37%로 확대했다. 유류세는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11월 20% 내린 뒤 2022년 5월부터 인하폭을 30%로 높여 적용해왔다. 유류세 인하로 정부의 세수입은 연간 10조원 가까이 줄어들 전망이다.
유류세 감면은 세수 감소 외에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대형차를 주로 타는 고소득층이 더 큰 혜택을 받는 역진성 때문이다. 가격 인하가 기름 소비를 오히려 부추기는 부작용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가 “정부가 석유제품에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세금을 감면하기보다 그 재원으로 취약계층을 직접 지원하라”고 권고하는 까닭이다.
정부도 이런 단점을 잘 안다. 경제 부처의 한 장관급 인사는 “물가가 오르면 정부는 사람들이 기름을 덜 소비하고 차도 덜 타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유류세를 깎아주면서 지금처럼 소비하라고 하는 건 시장을 거스르는 좋지 않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시장 친화를 강조하는 ‘윤석열표 물가정책’의 일관성이 뚜렷하지도 않다.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되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행보가 대표적이다. 검사 출신인 이 원장은 6월 취임 이후 은행 등 금융회사에 대출금리 인하를 거듭 압박하며 ‘관치금융’ 논란을 불렀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며 대출 수요를 줄이는데 금융당국은 반대로 금리를 끌어내리는 엇박자를 내는 셈이다.
금리와 함께 대표적 시장가격인 임금에도 정부의 직간접적 개입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공개 행사에서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연거푸 언급한 게 그 사례다. 대기업 위주의 급격한 임금 인상이 물가 상승 압력을 높이고 대·중소기업 간 소득 양극화도 심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발언이 월급쟁이 직장인에게만 희생을 전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이다. 2023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5% 오른 시간당 9620원으로 정해진 것도 노동계의 불만을 사고 있다. 2022년 최대 5%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하는 물가 상승을 고려하면 실질임금은 제자리걸음을 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물가가 치솟는 만큼 임금이 따라 오르지 않으면 월급봉투와 지갑이 얇아지는 구매력 감소가 불가피하다.
이 밖에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는 마땅치 않다. 물가를 안정시킬 정책 수단이 금세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얘기다. 정치권에서 추진하는 유류세 인하폭 확대, 직장인 식대 비과세 한도 확대(근로자 밥값 지원법) 등도 물가 부담을 일부 덜어주는 정도다.
물가를 잡을 가장 강력한 도구는 결국 금리다. 7월13일 기준금리 인상 여부를 결정할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는 까닭이다.
하지만 이 역시 딜레마에 빠져 있다. 가파른 정책 금리 인상이 자칫 대출이자 부담 확대, 소비·기업 투자 위축 등으로 경기침체를 초래할 수 있어서다. 최근 물가 급등은 국제 유가·곡물가 등 외부 공급가격 상승이 주요 원인인 만큼 수요를 죄는 금리 인상의 약발이 제대로 먹히지 않을 수 있단 것도 걱정거리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로나19 당시 풀린 막대한 유동성을 흡수하려면 통상적인 수준보다 더 큰 폭으로 기준금리를 올릴 필요가 있다”며 “한쪽에선 물가와 경기 후퇴 등으로 국민의 생활고가 깊어질 수 있는 만큼 소득이 낮은 분들을 위한 재정지원 등이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오 <한겨레>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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