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20개국(G20) 회담이 끝났다. 지구적 금융위기가 발발한 이후 처음으로 개최되는 회의라서 과연 이 위기에 대처하는 국제적인 지배 세력의 상황 인식이 어떠하며 또 그들의 공조 역량이 어떠한지를 알아보는 시금석과 같은 자리였다. 주지하듯이 이번 경제위기는 예사의 경기순환과는 달리 ‘70년 만의 대위기’라든가 ‘신자유주의의 종언’ 등과 같은 큰 질문과 화두를 던지면서 진행됐고, 1990년대 이후 사실상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고 진행돼온 지구적인 금융 탈규제의 논리가 크고도 근본적인 도전에 처한 사태다. 따라서 G20 회담이 어떻게 가닥을 잡느냐는 이후의 상황 전개를 가늠해보는 데 중요한 방향타가 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회담은 끝났다. 그런데 내신이나 외신이나 이에 대한 적극적인 논평을 찾아볼 수 없다. 지금까지 불거져나온 금융체제의 거의 모든 쟁점들이 논의 선상에 올랐기에 무언가 대단한 말잔치가 한번 지나갔다는 느낌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 말잔치의 밥상에 올라 찾아온 손님들의 뱃속으로 들어간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아직 애매하다고밖에 할 수가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재원을 확충하고 특별인출권(SDR)의 인출량을 늘려 지구적 위기 대처 역량을 준비한 것 정도가 분명한 성과라고 할까. 나머지 대부분의 문제는 G20 산하에 있는 금융안정화이사회(FSB)에서 올해까지 ‘논의’하도록 지시한 정도다. 게다가 그 ‘논의’ 내용이라는 것도 어떤 법적·제도적 규제 장치가 아니라 지구적 차원에서 주요한 행위자들이 금융체제의 안정성을 위해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이라고 한다.
‘가이드라인’으로 충분할까. 가이드라인이 행위자들에게 작동하는 힘이란, 이를 지키지 않았을 때 겪게 되는 평판이나 신용 악화 등에 대한 두려움인데, 현재와 같이 모든 행위자들의 생존이 위협당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과연 그 정도가 그들의 행동을 실제로 제어해갈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될까. 오히려 이 말은 “법적·제도적 규제는 없다”는 말을 뒤집어서 한 일종의 ‘수사학’이 아닐까.
이러한 의심을 더 깊게 하는 일이 있다. 분명히 이번 G20 회담은 국제적인 회계기준의 통일과 투명성이 담보되는 ‘시가(市價) 회계’의 전일적 실현을 지향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으며, 이를 실행할 수 있는 방법까지 논의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G20 회담에 참가한 주요 국가인 미국의 경우 그 회담 바로 며칠 전에 이 ‘국제적 시가 회계 표준’의 정신과 크게 어긋나는 조처를 취했다. 미국 국내 은행들에 실적 발표에 앞서 스스로의 자산평가에서 엄격한 시가 회계를 적용하는 대신 ‘자체적인 재량’에 의해 평가하도록 허용(사실상 장려)한 것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현재 각종 자산 시장은 심하게 악화된 상태이며, 이러한 자산 시장의 가격을 그대로 반영한 시가 회계를 했다가는 여러 은행과 금융 기관들이 사실상 파산 상태를 면치 못하게 된다. 씨티은행, 웰스파고 등 여러 은행들이 실적 발표를 맞아 파산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조장된 것도 그래서였다. 그런데 미국 정부는 여기에 일종의 편법을 동원해 사태를 피해간 것이다. 이것을 ‘분식회계의 양성화’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지, 도대체 ‘자체적 재량’이라는 것의 논리와 원칙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이러한 조처가 취해지는 데 의회 정치가들의 압력도 한몫했다는 후문이다. 그럴 법도 하다. 아니면 또 납세자들의 혈세 억만금을 들여야 할 판이니까.
이는 과연 G20에서 오고 간 ‘말’들이 미국을 위시한 참가국들의 진심을 어느 정도 담은 것인지 의심하게 한다. 이는 하나의 사례이지만, ‘시가 회계’라는 것이 신자유주의적 시장 자본주의가 추구해온 경제 질서에서 얼마나 중차대한 인프라인가를 생각해보면 그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다. 당장 이렇게 ‘재량껏’ 만들어진 회계장부를 과연 ‘시장’의 투자자들이 그대로 납득하고 따를까. 거기에서 은행들이 멋대로 가격을 붙인 각종 자산을 투자자들이 과연 액면 그대로 사들일까. 시장과 괴리될 것이 명약관화한 자산의 가격들은 그렇다면 공산주의 경제의 ‘명령’ 가격인가. G20 회담과 미국의 최근 조처는 그 주장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체 행동의 모순과 불일치 등을 통해서 ‘증후적으로’ 시장 자본주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를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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