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온난화의 두려움과 탄소 배출 절감의 절박성은 이제 지구적으로 거의 완벽한 합의에 도달한 문제다. 그러자 이 문제는 맑은 눈과 풋풋한 목소리를 가진 환경운동가들의 손을 떠나서 금융과 산업구조 재조정이라는 철저한 돈계산의 문제, 잠재적으로는 유럽·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 중국을 위시한 다른 개발도상국들이 충돌하는 지정학적 문제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탄소 배출 절감을 지구적으로 조직하기 위한 최초의 노력이었던 교토의정서는 다가오는 2012년 만료된다. 따라서 같은 해에는 더 공격적이고 폭넓은 탄소 배출 절감 프로그램이 지구적으로 합의돼야 하기에 지금 세계 주요국들은 자신들의 탄소 감축 계획을 발표하고 또 서로 비판하는 논의가 한창이다. 일본 정부는 며칠 전 2020년까지 2005년 기준 탄소 배출량의 15%를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 수치가 안팎으로 지독한 비판을 받고 있다. 물론 정반대의 입장에서.
먼저 일본 내부, 특히 재계 최대의 로비 집단인 게이단렌(경제단체연합회)은 이것이 일본 경제에 가혹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되레 1990년 기준 탄소 배출량에서 4% 정도를 더 배출하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일본이 이미 1970년대 오일쇼크 이래 세계에서 가장 에너지 효율성이 높은 경제로 전환한 상태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이 상태에서 다시 천명된 수치만큼 배출량을 줄이려다 보면 많은 생산업체들이 일본 밖으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심각한 실업과 경기 침체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들이 제시하는 해결책이 아주 흥미로운 걸작이다. 진정한 해결책은 일본이 이미 사용하고 있는 효율적인 에너지 기술을 중국 등 개발도상국으로 수출하는 것이란다.
바깥에서의 비판도 날카롭다. 특히 유럽 쪽은 일본이 아직도 세계에서 탄소 배출량이 다섯 번째로 높은 경제임을 강조하면서, 교토의정서 당시 약속한 2012년까지의 배출량 감소 약정을 조기 달성한 자신들과는 달리 일본은 거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음을 고발한다. 그런데도 갑자기 2005년 기준을 들어 무언가 대단한 숫자인 양 15% 감축을 운운하는 것은 약아빠진 잔꾀라는 것이다. 그래봐야 1990년 기준으로 하면 8% 감축일 뿐이라는 얘기다. 이에 대한 일본의 응수 또한 뜨끔하다. 일본은 유럽이 내세우는 자신들의 탄소 배출 감축량이 실제 배출 감축이 아니라 사실상 종잇장에 불과한 탄소 배출권 구입으로 상당 부분 메워진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폭로한다. 즉, 지구적 운명이라는 지상 과제의 구석에서 되레 탄소 배출권 사재기나 하며 돈벌이의 기회로 삼는 위선자들이라는 암시가 깔려 있다.
중국 쪽의 비판은 더욱 당차다. 중국은 단지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유럽 등도 모두 2020년까지 8% 따위가 아니라 자그마치 40%(1990년 기준)를 감축해야 한다는 요구를 턱 내놓고 있다. 뿐만 아니다. 이 나라들은 자국 국내총생산(GDP)의 0.5%에서 1%를 매년 내놓아 개발도상국들- 여기에는 물론 중국도 들어간다- 에 줘서 이들이 탄소 배출을 삭감하는 환경친화적 산업구조로 전환하는 비용을 보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서로에 대한 이들의 비난과 주장을 액면 그대로 정리한다면, 한쪽은 탄소 배출권을 열심히 사재기해 그 가격을 올림으로써 문제를 풀자고 하고, 다른 쪽은 자국 내 에너지 효율 기술을 마땅히 전세계로 수출해야 한다고 하며, 또 다른 쪽은 잘사는 나라들이 산업구조 전환 비용의 큰 몫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굴뚝산업’ 경제는 실업·고용 및 경기의 문제와 직결돼 있기 때문에 국가 이하의 무수한 행위자들이 제각각 달려들지 않기도 힘든 문제다. 과연 지구적 통치(governance) 체제는 이 모든 난관을 뚫고 2012년까지 포괄적인 탄소 배출 협약의 틀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 틀의 합의 전망이 복잡하다면 지금 누구나 이야기하는 ‘녹색 경제’의 미래는 또 어떻게 될까?
지구의 미래라는 이 시대의 과제가 경제 쟁점으로 변해버린 사태를 놓고 입맛만 다실 일이 아니다. 또 마치 해맑은 미래가 그냥 다가오는 것 같은 환상에 빠져 ‘녹색’이라는 형용사를 사방에 붙이면 만사형통이라는 환상에 빠질 일도 아니다. 탄소 배출권 문제는 지구적 차원에서의 산업구조 전환과 그것이 수반할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조건 변화까지 포괄하는 지극히 위험하고 예리한 싸움 주제로 바뀌어가는 듯하다. 60억 인구가 함께 살아갈 지구를 일구는 우리의 이상은 이러한 진흙탕에서 연꽃으로 피어나야 하며 또 그렇게 될 것이다.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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