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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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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가 ‘고용’이다?

비정규직법 유예 주장은 고용을 위해 해고를 보장한다는 어불성설
등록 2009-07-16 16:57 수정 2020-05-03 04:25
시민단체 회원들이 7월9일 국회 본청 앞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를 규탄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박종식 기자

시민단체 회원들이 7월9일 국회 본청 앞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를 규탄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박종식 기자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 그리고 보수 언론이 비정규직의 고용 유지에 이렇게 큰 애정과 관심이 있었는지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바다. 비정규직 관련법을 보류하지 않으면 ‘100만 고용 대란’이 온다는 주장까지 서슴지 않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을 유지하려면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불안정한 비정규직의 지위를 계속 유지시키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다. 요컨대, ‘고용’을 위해서 ‘해고’를 보장한다는 기묘한 논리가 된다.

차제에 이 논리를 좀더 확장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지난 30년간 지구촌을 풍미했던 신자유주의적인 담론 체계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은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것뿐이라는 게다. 논리는 이러하다. 일자리가 생기려면 자본을 투자해야 한다. 그런데 노조의 ‘전횡’이나 지나친 노동 관련 규제 등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이 지나치게 높고 잘 떨어지지 않으면 투자가 이루어질 리 없고 그런 조건을 틈타 일자리를 보전하는 ‘철밥통’ 노동자들만 살판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더 많은 투자와 고용을 유발하려면 이러한 체제를 혁파해 누구나 어디서나 언제든지 손쉽게 해고할 수 있는 ‘노동시장 유연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이래야만 모두에게 일자리가 보장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고용’을 위해서는 ‘해고’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불성설이라는 말이 있다. 언어도단이라는 말도 있다. 주류 경제학은 현란한 수식과 복잡한 논리로 무장한 듯 보이지만 그 결론이라는 것이 이렇게 앞뒤가 안 맞는 역설이 되는 경우가 있다. 세계 대공황 직후인 1932년 스웨덴의 부르주아 정당은 다시 투자를 일으키려면 저축 증대가 절실하며, 저축 증대를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극단적으로 삭감하거나 아예 대량 해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회민주당의 기수 비그포르스는 이러한 논리가 바로 ‘노동은 곧 사치’라는 기묘한 어불성설임을 폭로한다. 노동이 부의 창출의 근원임은 상식이 아닌가. 따라서 사회 전체의 부를 늘리려면 가급적 더 많은 사람들이 가급적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도 상식이 아닌가. 그런데 저 논리는 되레 노동이 곧 사치라고 몰아붙여서 사회의 부를 늘리려면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실업 상태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해고가 곧 고용이다’라는 오늘날의 주장도 따지고 보면 이 옛날 어불성설의 변형에 불과하다.

한데, 이 주장은 사실 어불성설이 아니다. 일자리의 창출은 전적으로 자본 투자에 달려 있으니 자본이 돈을 크게 풀 수 있도록 자본의 비위를 맞추는 것만이 고용, 나아가 경제성장의 열쇠라는 노골적인 자본의 이데올로기로 이해하면 명석한 논리가 된다. 자본도 국민 경제의 일 주체이니 자신들 입장에서 여러 가지 논리를 전개할 수 있고 주장할 수 있다. 문제는 이것이 마치 노동자들, 나아가 전 국민의 부와 번영을 보장하는 논리인 것처럼 둔갑할 때이다. ‘더 많은 자본 축적을 위해서는 해고의 자유가 필요하다’는 것은 전혀 어불성설이 아니며 아주 명쾌하고도 설득력 있는 논리이다. 하지만 여기에 ‘자본 축적=고용 증대와 경제 전체의 번영’이라는 상당히 의심쩍고 문제 많은 등식 하나를 살짝 집어넣게 되면 ‘고용 증대와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해고의 자유가 필요하다’, 즉 ‘해고가 곧 고용이다’라는 어불성설이 생겨나게 된다.

‘노동시장 유연성’이라는 것이 자본과 고용자 쪽 이익에서 필요한 것이라고는 말할지언정, 노동자와 국민 전체의 이익인 것처럼 말하지는 마라.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에서 정리해고가 도입될 당시 이를 통해 노동시장이 ‘유연화’되면 곧 다시 고용이 창출될 것이니 노동자들도 결국 더 혜택을 보게 되리라는 정당화의 논리가 횡행했다. 사람들은 그럴 줄 알았다. 그러고 나서 10년이 흘렀지만, 청년 실업은 늘어만 가고 일자리는 도처에서 달리며 되레 불안정한 처지의 비정규직 노동만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일자리가 넘쳐나게 해줄 ‘고도를 기다리며’ 10년을 보냈건만 기껏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정부 책임자의 입에서 나온 ‘100만 실업 대란’ 따위의 흉측한 소문이다. 그리고 아직도 ‘노동시장 유연성’을 더 많이 늘려야 한다는 주장만 더 크게 되풀이된다. 지난 10년간의 경험으로 볼 때 자본의 축적이 수월해지면 과연 ‘실물’ 투자와 고용이 늘어나서 경제성장이 벌어져왔던가. 10년 정도면 충분하다. 정말로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정말로 경제가 살아나게 만드는 방법에 대해 근본적으로 의심하고 성찰해볼 때가 되었다.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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